충청북도 제천 출신. 이용태(李容兌)의 동생이다.
1927년 신간회(新幹會)에 가입,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 뒤 중국으로 건너가 정화암(鄭華岩)이 주도하는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에 가입하여 1931년 11월 행동단체인 결사대(흑색공포단)를 편성, 이강훈(李康勳)·백정기(白正基)·오면직(吳冕稙) 등과 같이 톈진[天津]의 일본총영사관·일본병영 등에 투탄하고 일본영사관 밀정들을 살해하였다.
푸젠성 취안저우[福建省泉州]의 민단훈련소(民團訓鍊所) 중심인물격인 진망산(秦望山)으로부터 활동자금을 받았다. 1931년 12월 백정기·엄순봉(嚴舜奉)·김성수(金聖秀)와 함께 상해(上海)에서 금·은 교역 겸 과물상을 경영하는 조선인 이명섭(李明燮)의 집에서 조선은행권 80원과 중국지폐 700원 등을 독립군자금으로 가져갔다.
1932년 12월 유기석(柳基石)의 권유로 일본총영사관에 투탄하였으나 일부만 파괴하였다. 1935년 정화암과 함께 엄형순·이규창(李圭昌) 등으로 하여금 상해거류민회 부회장인 친일파 이용로(李容魯)를 총살, 처형하도록 하였다.
1937년 충칭[重慶]의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여 중앙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38년 12월 1933년 수립한 일본공사 암살계획 혐의로 북경(北京)에서 잡혀 1940년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