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춘고(春皐). 전라북도 옥구(현,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출생. 서울 보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19년 2월 28일 정동 예배당 구내의 이필주(李弼柱)목사 집에서 중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의 실행을 계획하였는데, 보성중학교 대표로 참석하여 최후의 목적을 달성할 때 백절불굴의 투지로 최선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으로 학생들을 참석하게 하고 선언서를 배포하여 시위운동을 주도하며 미국영사관과의 연락 책임을 지고 활동하였다.
3월 5일 오전 9시 서울역광장에서 군중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다가 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출옥하자마자 전재산을 방매하여 동삼성으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에게 8,000원의 군자금을 주고 군자금모집원이 되어 계속 투쟁하였다.
그뒤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를 졸업하고 8·15광복 이후 고향에 임피중학교를 설립, 교장이 되고 전라북도교육위원에 선임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