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

양주 이준선생 묘 정면
양주 이준선생 묘 정면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좌참찬,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평숙(平叔)
뇌진자(懶眞子), 서파(西坡)
시호
숙헌(肅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5년(인종 1)
사망 연도
1624년(인조 1)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헌납|진주목사|대사간|안동부사|좌참찬|형조판서|이조판서
관련 사건
임진왜란|계축옥사
정의
조선 후기에, 좌참찬, 형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평숙(平叔), 호는 뇌진자(懶眞子)·서파(西坡).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후손이며, 상산수(商山守) 이계보(李繼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억손(李憶孫)이고, 아버지는 이유정(李惟貞)이며, 어머니는 김기서(金麒瑞)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8년(선조 1) 증광 문과에 급제한 뒤 주서·정언을 거쳐 1581년 헌납이 되고 이어 진주목사·의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나자 도승지로서 죄인을 다스리는 데 공을 세워 평난공신(平難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전성군(全城君)에 봉하여졌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운향사(運餉使)가 되어 명나라 군사의 군량미 조달책임을 맡았으나 병으로 은퇴하였다. 그뒤 한성부좌윤·춘천부사를 거쳐 예조·병조의 참판을 지내고, 1600년 대사간이 되었으나 북인 홍여순(洪汝諄)의 일파로 몰려 한 때 파직되었다.

그러나 1600년 안동부사·경주부윤으로 복귀하였고, 광해군 때 좌참찬·형조판서·공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15년(광해군 7) 개성부유수가 되었다.

이어 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 대북의 일파가 계축옥사를 일으키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하는 등 정사를 어지럽히자 벼슬을 버리고 은퇴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석담일기(石潭日記)』(이이)
『문소만록(聞韶漫錄)』(윤국형)
『기축록(己丑錄)』(황혁)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장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