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성숙(性叔), 호는 후은(後隱). 경상북도 영천 출신. 이정봉(李禎鳳)의 아들이다.
1907년 한국군 강제해산 이후 의병봉기가 확대되어갈 때 경상남도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켜 박동의(朴東儀)를 의병장으로 하고, 부장(副將)이 되었다.
1908년 8월 독립하여 의병대장이 되어 의병장 허위(許蔿)의 명령을 받고 서울에서 온 서병희(徐炳熙)와 의병 18명을 거느리고 산청군 두량골[斗量谷]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그 뒤 곳곳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으며, 1909년 1월에는 산청군 덕산에서 서병희와 부하 11명을 거느리고 함안군 산외면 방목동에 있는 일본인 집을 습격하여 이를 소각하였다. 함안지역에서 활동을 계속하였고, 6월에는 30여명을 이끌고 칠원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고, 또 창원·의령·고성·진주 등지에서 일본인 상점을 습격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 해 겨울에는 함안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으나 붙잡혀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