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하현(夏玄), 호는 우해(于海)·내산(奈山), 일명 능우(能雨). 경상북도 영양 출신. 이수단(李壽檀)의 아들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그 해 11월 청송 주왕산(周王山)에서 동지 수십 명이 모여 의병을 일으켜 적을 토벌하기로 하고 부근에 통문을 보내어 강원도·경상도의 의사들을 모집하였다. 12월 중순경 울진 불영사(佛影寺)에서 안동·청송·진보·영양의 4군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의병 500여 명을 주왕산에서 훈련시켜 1906년 2월 영양군 입암면 교리에서 의병진을 편성한 뒤 일본군과 수십 회 교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4월에는 진보의 오누저수지에서 당시 일본군의 강원도·경상도의 이른바 의병소탕부대의 책임자를 비롯, 일본군 수십명을 사살하였으며, 신돌석(申乭錫)·정용기(鄭鏞基) 등의 의병부대와 제휴,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06년 5월 울진·죽변·왜관의 일본군을 격파하고 영양 북방의 일본군을 공격하다가 적의 역습을 받아 부상을 당하고 도포장(都砲將) 김대규(金大圭)가 전사하자 후퇴하여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이 후 영일군 청하면 모진리 산속에 은거하여 상처를 치료하면서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으나, 총상의 여독으로 죽었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