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문호(文好). 호는 기주(箕疇). 상주 출생. 정경세(鄭經世)의 후손으로, 정상관(鄭象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이전(二典)·삼경(三經)을 다독(多讀)하였으며, 제자백가서에도 정통하였다.
스스로 검소함을 지켜 마포(麻布) 옷이 아니면 평생에 입지 않았고, 자질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반드시 가정의 전통학(傳統學)을 우선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는 천고의 한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고 주장하여 이를 반대하였고, 이듬해 영남유생을 대표하여 서원철폐령의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대원군의 노여움을 사서 50여 일을 경상감영에 압류되었다가 돌아왔다.
1882년 정신(廷臣)의 추천으로 특별히 선공감(繕工監)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뒤 돈녕부도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