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유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하동(河東)
주요 관직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목차
정의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형부상서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서북면병마사·형부상서 등의 벼슬을 지냈다.

1184년(명종 14) 서북면병마사로 있으면서 백성의 재물을 거두어 내부(內府)에 바쳐 왕의 환심을 샀다.

서북면에서 돌아와 아들 정윤당(鄭允當)을 전조(銓曹: 인사행정부서)에 임명하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정윤당의 나이가 어리고 지식이 없었으므로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郎)에 임명되었다.

1195년 형부상서로 승진하자 참지정사(參知政事) 상장군 문장필(文章弼) 등 여러 장군이 "정세유가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로 있을 때 백성들로부터 명주실과 진귀한 물품 등을 거두어들이면서 공물로 바치는 것이라고 사칭하고 역을 통해 그의 집으로 옮긴 점, 형부상서로 있으면서 문서를 뜯어고치고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뇌물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람의 죄를 다룬 죄" 등을 들어 탄핵하여 섬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났다가 1194년 반역을 도모한다는 대정(隊正) 이금대(李金大)의 밀고에 의해서 그 아들 정윤당·정숙첨(鄭叔瞻) 등과 함께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집필자
이상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