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이다. 호는 면재(勉齋)이며, 평장사 정연(鄭椽)의 아들이다.
1320년(충숙왕 7) 국자시(國子試)에서 고부(古賦)에 합격하였다. 1343년(충혜왕 복위4)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전민추쇄도감제조(田民推刷都監提調)로 임명되었으며, 이어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1352년(공민왕 1) 조일신(趙日新)의 세력을 배경으로 찬성사(贊成事)가 되었다. 조일신은 공민왕을 수종한 공을 믿고 부당한 행위를 저질러 위기를 느끼자, 친원세력인 기씨(奇氏) 일파 등을 제거하고자 모의하였다. 이 반란은 6일 만에 평정되고 왕명에 의해 조일신이 주살되자 정을보는 조일신의 도당(徒黨)이었기 때문에 그 일파와 함께 투옥되었다가, 광양감무(光陽監務)로 좌천되었다. 시호는 문량(文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