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응린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대사간, 부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인지(麟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청주(淸州)
주요 관직
대사간|부평부사
정의
조선 전기에, 동부승지, 대사간, 부평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인지(麟之). 효충(孝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옥경(鄭沃卿)이고, 아버지는 정윤증(鄭胤曾)이며, 어머니는 이창동(李昌東)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0년(중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저작·박사를 거쳐 외직으로 김산군수를 지내고 다시 사헌부의 지평과 장령을 지냈다. 그 뒤 사간원의 사간을 지내고 1525년 응교를 거쳐 직제학이 되었으며, 이어서 동부승지를 지내고 대사간으로 승진하다.

1527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다. 내직에 있을 때에는 성실과 근면으로 자기의 책무를 완수하였고, 외직인 목민의 관이 되어서는 백성의 질고를 보살피며 부세(附稅)를 경감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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