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동망(東望), 호는 국당(菊堂)·삼당(三堂). 정휴복(鄭休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호(鄭灝)이고, 아버지는 이조좌랑 정양우(鄭良佑)이며, 어머니는 홍백순(洪百順)의 딸이다. 우의정 강석기(姜碩期)의 사위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고, 1639년 정언·지평·헌납을 거쳐 이듬해 이조좌랑을 지냈다. 1642년 이조정랑이 되고, 이어서 응교·집의, 1644년 사간·동부승지를 역임하고, 이듬해 정조사(正朝使)로 청나라 연경(燕京)에 갔을 때 순치제(順治帝)에게 간청하여 봉림대군(鳳林大君)의 귀환을 허락받았다.
돌아와서 밀양부사가 되었으나, 이듬해 공청감사(公淸監司) 임담(林墰)과 유탁(柳濯)의 모반사건에 연루, 유배되다. 그 뒤 죄가 풀려 다시 삼사(三司)의 벼슬을 거쳐 이조참의·승지를 지냈으며, 1659년(현종 1) 동래부사로 나갔다. 저서로 『국당배어(菊堂俳語)』와 한문소설 「천군연의(天君衍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