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태시(泰始). 조한보(趙漢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정우(趙廷禹)이고, 아버지는 부사 조상존(趙象存)이며, 어머니는 윤근(尹勤)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향시에서 수석을 하였으나, 호적이 누락되어 있어 제적되자 정조의 특명으로 부내에 집을 지었다. 1792년 친림 응제에서 거수를 하여 직부전시를 상으로 받고 1794년 유학으로서 과거에 급제하였다.
1794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기주관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면서 한림회권(翰林會圈 : 예문관검열을 뽑기 위해 예문관 전임 관원들이 피선자에게 낙점을 찍음)에 뽑히고 규장각 초계문신에 선발되는 등 정조의 특별한 배려를 받았다.
이 후 부교리·정언·지평 및 이조·병조 낭관을 거쳤고, 초계시(抄啓試)에서 세번 수석을 하여 4품에 오른 뒤 부안현령이 되었다. 1802년(순조 2) 승정원승지·대사간·이조참의·형조참의·자산부사가 되었고, 1809년 이후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의 참판을 거쳤으며, 1818년에 부사로서 연경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다음해 대사성을 거쳐 강화유수가 되어서는 세금감면·향약실시에 노력하였고, 1821년에 형조판서 겸 예문관제학이 되었으며, 동지정사(冬至正使)로서 다시 연경에 다녀왔다.
다음해 한성판윤 겸 지경연사(漢城判尹兼知經筵事)로 재직중 사망하였다. 성격이 밝으면서 부드럽고 깊이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독서에 전념하였고 안분순명(安分順命)을 규범으로 삼아 생활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