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평산 출신. 1920년 2월 만주로 망명한 이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정의부(正義府)에서 활동하였다. 정의부에서는 군사교육을 받았는데 이후 정의부 의용군 제4중대장 부관에 임명되었다.
1924년 정의부 의용군(義勇軍) 제2중대 대표 자격으로서 73여 명과 공동명의로 남·북만주의 전 독립군 세력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치 아래 모이자는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26년 11월 길림성 반석현(磐石縣)에서 개최된 정의부(正義府) 중앙총회에서 소대장에 임명되었다.
조선혁명군이 조직되었을 때 중대장, 제2사장, 제3로 사령관 등 간부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조선혁명군 양세봉, 참모 김학규, 중대장 최운구, 정봉길 등과 함께 3개 중대를 이끌고 중국 의용군 왕동헌(王彤軒), 양석복(梁錫福) 등과 연합작전을 펴 신빈(新賓)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여 승리하였다.
1933년 7월 7일 조선혁명군이 영릉가(永陵街) 석인구(石人溝)에서 일본과 교전할 때 불리한 형세에 처하였는데 조화선은 중대 부대를 이끌고 지원에 나서 일본군 40여 명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퇴각한 일본군은 다시 1개 대대의 병력을 동원하여 반격해 왔지만, 이 때 조화선은 대원을 이끌고 최윤용 부대와 연합하여 다시 격퇴시켰다. 이후에도 조화선은 많은 전투를 치렀고, 1938년 2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전투 중 전사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