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덕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대한통군부 총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심호(沈湖)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925년
본관
평강(平康)
출생지
황해도 사리원
관련 사건
고마령전투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대한통군부 총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채상덕(蔡尙悳). 본관은 평강(平康). 호는 심호(深湖). 황해도 사리원 출생.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생으로 최익현의 뒤를 따라 의병초모에 전심전력하였다.

황해도 사리원·재령·해주·신막·안악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하였으며, 안필호(安弼濩)·최봉소(崔鳳韶)·최전구(崔銓九)·윤항식(尹恒植)·이승회(李承會)·채만식(蔡萬植)·이승원(李承遠) 등과 함께 의병투쟁에 동참하여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뒤 만주 동삼성(東三省)으로 망명, 이진룡(李鎭龍)·홍재학(洪在學) 등을 만나 의병투쟁 및 항일투쟁의 방략을 논의하였다.

1922년 봉천성(奉天省) 환인현(桓仁縣)에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한족회(韓族會)·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여러 단체가 1년여에 걸친 일제토벌성공의 축하연을 개최하는 모임에서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결성하였을 때 총장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 뒤 1923년 8월 8일 평안북도 의주군 청성주재소를 공격, 일본순사를 사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주재소를 소각하였다.

1925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직할 군사단체인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滿參議府) 군대가 고마령전투(古馬嶺戰鬪)에서 일본군에게 참패하자, 이 소식을 접한 뒤 의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만주지역 한인민족운동의 재발견』(박환, 국학자료원, 2014)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한민족광복투쟁사』(이현희, 정음문화사, 1990)
『한민족독립운동사연구』(박영석, 일조각, 1982)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자료집』10(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독립운동사』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집필자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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