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점. 1984년 충청남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유태는 경주인(慶州人)으로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이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예학(禮學)에 이름이 높았다.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인조 때 세자사부(世子師傅)를 지내고 이조참의 · 승지 ·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예송(禮訟)으로 영변에 5년간 유배되어 있었고, 효종 때는 동문 송시열(宋時烈) · 송준길(宋浚吉) 등과 함께 북벌계획에 참여한 바도 있었다.
지정된 유물은 호패(戶牌) 9개(이유태의 호패 1개와 후손의 목제호패 8개), 인장 5과(顆, 이유태의 方形(해태조각) 玉印 1顆와 圓 · 方形 木 · 角印 4과), 관자(貫子) 2쌍(옥제와 금제 각 1쌍), 표주박 2개(소형으로 흑칠을 한 목제 원형 대 · 소), 백자호(白磁壺) 2개(백색 有蓋壺로 이유태의 묘에서 이장시 출토된 부장품), 첨경통(籤經筒) 2개(첨통과 강경통 각 1개) 등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 이정우(李禎雨)가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