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봉사, 진주부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 의병.
이칭
규중(圭仲)
모산(茅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593년(선조 26) 6월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진주부관
관련 사건
임진왜란|진주성전투
정의
조선 중기에, 봉사, 진주부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2차 진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 의병.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항왜구국(抗倭救國)의 대의를 성언(聲言)하며 관군·의군의 적 토벌을 지원하였다.

이듬해 적군이 후퇴할 무렵, 가토(加藤淸正) 등이 진주에서의 패전을 복수하려고 많은 군사를 진주로 집결하여 진주성이 위태로워지자 6,063명의 의병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가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進) 등 수성장(守城將)들과 합심, 분전하였다.

그 해 6월 성이 함락됨과 함께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뒤에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난중잡록(亂中雜錄)』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집필자
김용국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