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항왜구국(抗倭救國)의 대의를 성언(聲言)하며 관군·의군의 적 토벌을 지원하였다.
이듬해 적군이 후퇴할 무렵, 가토(加藤淸正) 등이 진주에서의 패전을 복수하려고 많은 군사를 진주로 집결하여 진주성이 위태로워지자 6,063명의 의병을 이끌고 성 안으로 들어가 김천일(金千鎰)·최경회(崔慶會)·황진(黃進) 등 수성장(守城將)들과 합심, 분전하였다.
그 해 6월 성이 함락됨과 함께 남강(南江)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뒤에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되고,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