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태보(台甫), 호는 노곡(老谷). 최원지(崔元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자강(崔自江)이고, 아버지는 우찬성 최선문(崔善問)이며, 어머니는 김명리(金明理)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서 7세에 이미 시를 지었다고 한다. 1453년(단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용교위(進勇校尉)에 기용되고, 1459년(세조 5) 식년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다.
1467년 정언이 되었다. 이듬해 세조가 사간원에 구언(求言)하자 소를 올린 문구 중에 관로를 문란하게 한 내용이 있다 하여 투옥되었다.
얼마 뒤 풀려나 부모를 봉양한다는 구실로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왔다. 산수(山水)를 좋아해서 친구들과 절경을 찾아 시주(詩酒)로 소일하고, 서당을 세워 후진을 계도하는 데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