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문고는 1988년 지정된 보물로 옛 선비들의 애완품으로 사용된 악기로서는 유일하게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거문고는 높이 10㎝, 길이 160㎝, 너비 19㎝이며 1490년(성종 21)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문고 중앙 부분에 ‘濯纓琴(탁영금)’이라는 문자가 음각되어 있고 학(鶴)의 그림이 거문고 하단부에 그려져 있다. 거문고의 용두(龍頭)·운족(雲足) 등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고, 봉미(鳳尾)·괘 등 부품 일부를 개수한 흔적이 보이는데, 거문고 뒷면의 판자(判字)는 필자를 알 수 없으며, 김일손의 친필과 약간 유사하지만, 꼭 친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탁영금이 있었다는 기록은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동금류변증설(東琴類辨證說)에서 ‘濯纓子 金馹孫書文絃琴背曰 王山岳得七絃琴…’의 글이 보이고 있다.
또한, 『탁영금보』에 의하면 계축(癸丑) 겨울에 신개지(申漑之)·강사호(姜士浩)·김자헌(金子獻)·이과지(李顆枝)·이사성(李師聖) 등과 함께 글공부를 하면서 여가에 거문고를 배우고, 옥당에 있을 때는 권향지(權嚮之)와도 내왕하면서 배웠다고 하는바, 이들은 모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들이다.
또한, 동화문(東華門) 밖 어느집 대문의 나무가 좋게 보여서 주인에게 물으니 약 100년은 된 문이라 하기에, 그 대문 판자를 얻어 거문고를 만들고 이름을 ‘문비금(門扉琴)’이라 하였고, 이거사(李居士)에게 부탁하여 학의 그림을 그렸는데, 그 소리가 청월(淸越)하였다고 육현명(六絃銘)에 기록하였다고 한다. 대구의 김헌수(金獻洙)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탁영금은 음악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악기이지만, 역사에 구체적인 흔적을 뚜렷이 남긴 젊은 선비의 기개가 담긴 정신적 문화유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