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익의 호는 포저, 시호는 문효(文孝)이며 풍양인이다.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으로 성리학 · 예학 등에 밝았고, 문과를 거쳐 벼슬이 좌의정에 올랐다.
『포저유서』는 조익의 문집으로 35권 18책과 연보(年譜) 5권 2책의 40권 2책이 전해왔다. 그 내용은 시(詩), 소(疏), 차(箚), 계사(啓辭), 서(書), 잡저(雜書), 서(序), 기(記), 발(跋), 잠명(箴銘), 교문(敎文), 교서(敎書), 전(箋), 정문(呈文), 이자(移咨), 책문(策問), 축문(祝文), 제문(祭文), 묘문류(墓文類), 행장(行狀) 등이었다.
후보(後補)로 가례향의(家禮鄕宜) 필본과, 주서요류(朱書要類) 인본(印本), 그리고 포저선생 동계록(同契錄) 필본 등 11권의 합편(合編)으로 포저전집(浦渚全集) 상 · 하권을 풍양조씨 문중에서 펴냈다.
조복양은 1609년(광해군 1)에 출생하여 1671년(현종 12)에 사망했는데, 호는 송곡(松谷), 시호(諡號)는 문간(文簡)으로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문과를 거쳐 벼슬이 대제학 판서 등 요직을 지내는 동안 치적이 있었다.
송곡집은 12권 6책으로 1705년(숙종 31) 그의 조카 지정(持正) · 지항(持恒)의 공수(共修)로 송곡의 아우 내양(來陽)의 글 도산유고(道山遺稿) 약간을 끝에 붙였다. 그 내용은 시(詩), 소답(疏答), 계사(啓辭), 책문(冊文), 교서(敎書), 불윤비답(不允批答), 전(箋), 상량문(上樑文), 표(表), 잡저(雜著), 제문(祭文), 비지(碑誌), 행장(行狀), 부록(附錄)으로 되었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신양리 풍양조씨 포저공 종중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