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진백(晉伯), 호는 태계(台溪). 대사간 하결(河潔)의 7세손이며, 하기곤(河起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공조참의 하한(河瀚)이고, 아버지는 하공효(河公孝)이며, 어머니는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 윤기(尹起)의 딸이다.
이각(李殼)의 문인이다. 어렸을 때 덕천서원(德川書院)에서 학문의 기초를 닦았다. 1624년(인조 2) 생원·진사의 양시에 합격하고, 163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부모봉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에 추대되어 상주에 이르렀다가 아버지의 상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상을 마친 뒤 병조낭관·헌납·지평을 역임하다가 신병과 어머니의 봉양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년) 다시 지평으로 부름을 받고 나아가 사은한 다음 김자점(金自點)의 전횡을 탄핵하고 즉시 사임, 귀향하였다. 그 뒤 여러 번 장령·사간·집의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병을 이유로 취임하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관후한 성품으로 직언을 잘하였다.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저서로 『태계문집』 4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