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병 (Han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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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애양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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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개념
나균에 의한 감염증으로 피부나 말초신경계에 침입하여 병변을 일으키는 감염병. 나병.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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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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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나균에 의한 감염증으로 피부나 말초신경계에 침입하여 병변을 일으키는 감염병. 나병.
내용

과거 나병(癩病)이라고 불렸으며, 제2급 법정감염병이다. 주로 피부에 나타나는 침윤(浸潤)·구진(丘疹)·홍반(紅斑)·멍울〔結節〕 등과 지각마비(知覺痲痺)를 가져오는 만성감염병이다.

거의 전세계에 퍼져 있었으나 근래에 이르러서는 주로 열대와 아열대 지방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열대지방에서는 천 명 중 5명, 혹은 그 이상이 이 병에 걸리며, 인도에는 백만 명 이상의 환자가 있다.

병원균은 결핵균과 비슷한 항산성나병균(抗酸性癩病菌)이다. 전파방법은 명확하지 않으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하여 감염된다고 본다. 이 병의 전염성은 별로 높지 않으나 한번 발병하면 눈썹이 빠지고 피부와 근육이 문드러져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꺼리고 악병시(惡病視)해 왔다.

이 병은 유전병도 천형(天刑)의 병도 아니다. 엄격한 의미에서 나병에 선천적 소인(素因)이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아무나 나병균에 접촉이 잦으면 전염될 수 있고, 흔히 연약한 점막(粘膜)이나 피부, 또는 상처를 통해 전염된다.

환자의 나병균 배출은 주로 피부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궤양(潰瘍)이나 외상(外傷)·수종(水腫) 등이 있는 부위에서 균이 배출되어 전염되며, 결절형(結節型)인 나병환자의 경우에는 콧물을 통해서도 많이 배출된다.

이 병은 결핵과 똑같이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로 그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다. 나병균이 침입하더라도 결핵과는 달리 잠복기가 3, 4년부터 수십 년이나 되어 초기 증상이 언제 시작하는지 찾아내기가 힘들다.

근래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인도 및 중국에 100만 명, 아프리카에 40만 명, 남아메리카에 6만 명, 태평양제도에 3만 명 정도의 나병환자가 있다.

우리나라는 1,000명 미만의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으며, 1만 9,000명의 과거 나병 경력자가 관리를 받고 있다. 임상의학적으로는 나종형나병(癩腫型癩病)·결핵양나병(結核樣癩病)·혼합형 등으로 그 증상이 구분되며, 진단은 세균학적 방법에 따라 이루어지고, 투약을 장기간 계속하면 대개 병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을 보면 나병 외에도 나질(癩疾)·대풍나(大風癩)·대풍질(大風疾)·대풍창(大風瘡)은 물론 악병이라는 용어로 쓰여 왔다. 물론 악창(惡瘡)이나 악병이 나병만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 중에 포함되어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나병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에서도 『논어』에 나병에 관한 기록이 나오며, 인도에도 기원전 600년부터 이에 관한 기록이 나오고, 『구약성경』 레위기(Lewi記)에도 나병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물론 이와 같은 기록은 오늘날의 나병균에 의한 나병뿐만 아니라 악성 피부증상이 있는 대부분의 질병을 아울러 일컬은 것이리라 짐작된다.

세종 때 만든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권3 풍문(風門)의 대풍나조(大風癩條)를 보면 나병에 관한 기록이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대풍나병은 모두 악풍(惡風)과 기해(忌害)하는 바에 범촉(犯觸)되어서 생겨나는 병이다. 처음에 이 병에 걸리면 피부가 마비되고, 점점 괴로워지며, 가려운 것이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과 같고, 붉고 검은 발진이 생긴다. 초기에 이 병을 바로 고치려면 미곡(米穀)이나 독어(毒魚) 같은 것을 먹지 말고, 호마(胡麻)와 송출(松朮) 같은 것을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또 대개 이 병은 풍이 생김에 따라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초기에는 별로 큰 피해가 없지만 풍독(風毒)이 피부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지(四肢)를 돌아서, 혹은 오장(五臟)에 들어가 털구멍이나 피부를 막히게 한다.

이 때문에 기혈(氣血)이 괴리(乖離)되고 마침내 피부가 마비되며, 동전 크기의 돌기(突起)가 생겨나고, 손바닥 같은 곳에 점점 퍼지면 마른 나뭇가지같이 되고, 침으로 찔러도 아프지 않다.”고 하였다.

그리고 머리나 안면(顔面), 혹은 가슴이나 목에도 생기며,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 같은 증상을 나타내고, 온몸에 퍼져서 아프고 가려우며 상처가 생겨나 오래되면 피부와 근절(筋節)이 파괴되어 문드러진다. 따라서 나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향약집성방』에서는 나병에는 목라(木癩)·화라(火癩)·토라(土癩)·우라(雨癩)·적라(虳癩) 등이 있어서 각기 증세를 달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가운데 대풍질이나 대풍미빈타락(大風眉鬢墮落) 같은 표현을 보더라도 나병의 증세를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피부가 가렵고 아프며, 어루러기 같은 발진이 생기고, 피부의 지각신경(知覺神經)이 마비되며 동전 크기의 돌기가 생기고, 심하면 침이나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으며, 더욱 심해지면 피부와 근육이 헌다는 말은 오늘날 서양의학에서 설명하고 있는 증세와 거의 일치한다.

다만 이 병이 악풍이나 기해하여야 할 것을 범촉함으로써 생겨난다든지, 풍독이 몸 안에 들어와서 일으킨다는 말은 감염병의 미생물설이 확립되기 이전 당시의 사정에서 미루어 보건대 전통적인 오운육기설(五運六氣說)과 같은 자연철학적 관점에서 이 병이 발생되었다고 본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민간에서는 천형의 병이라 일컬어 왔듯이, 이 병이 역신(疫神)이나 귀신의 소행이라고 보아 그와 같이 일러 온 것은 사실이나, 당시에도 나병이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옮겨진다는 전염설이 있었다는 사실도 『세종실록』에 나온다.

1425년(세종 7) 11월조에 “제주에 나질이 흥행하여 사람들이 그 전염이 두려워서 환자를 사람이 없는 해변에 방치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광해군일기』의 1612년(광해군 4) 4월조에도 “대풍창에 걸린 자가 물 속에 들어가 몸을 닦거나, 혹은 집에서 가려운 데를 긁기 때문에 물고기나 집에서 기르는 닭들이 그 딱지〔瘡痂〕를 먹게 되어, 이와 같은 고기나 가축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된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정도의 차는 있으나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염되거나 사람에게서 동물이나 다른 물건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사실을 우리 선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다만 악풍이나 범촉해서는 안 될, 좋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이 병이 생겨난다고 한 것은 유럽의 세균학사에서도 나타난 바와 같이 무생물에서 유생물이 생겨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와 같이 병의 원인을 추리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선이나 밥을 먹지 말고, 호마나 송출 같은 것을 먹으라는 것은 합리적인 치료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동의보감』 잡병편(雜病篇) 권8 제창(諸瘡) 중에도 대풍창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대풍창의 근원에는 삼종(三種)이 있고, 오사(五死)가 있는데, 이 삼종은 첫째가 풍수(風水)이고, 둘째가 전변(傳變)이고, 셋째가 스스로 조섭(調攝)하지 않는 것이다. 또, 오사는 첫째 피부가 죽고 마비되는 것이고, 둘째는 살이 죽어서 베어도 아프지 않은 것이고, 셋째는 피가 죽어서 궤란(潰爛)하여 고름집이 생기는 것이고, 넷째는 근육이 죽어서 수족이 빠져 나가는 것이고, 다섯째는 뼈가 죽어서 콧날이 문드러지고 눈알이 빠져 나가고 입술이 뒤집히고 목소리가 쉬어서 말을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즉, 나병의 근원을 세 가지로 분류했고, 증상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서 피부에 마비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비롯하여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콧날이 문드러지고 눈알이 빠지는 단계까지를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는 나병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 첫째가 풍수요, 둘째가 전변이요, 셋째가 불섭생(不攝生)이라 하여, 전염의 가능성을 둘째로 지적한 것은 사람의 몸 안에서 이 병이 변전(變轉)하거나 바뀌고 옮겨진다는 것을 나타내어 『향약집성방』의 악풍이나 기해할 바를 범촉하여 생겨난다는 단순한 병인론(病因論)에서 더욱 합리화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악병의 치료와 관련하여 인육(人肉)을 약용(藥用)으로 했다는 말은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도 나오는 바로, 할고행효(割股行孝: 허벅지의 살을 도려내어 효도함)·단지효양(斷指孝養: 손가락을 베어 피를 얻어 효도함)의 이야기와 함께, 악창이나 악병을 치료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의 간을 쓴 일이 있다는 기록이 여기저기 보인다.

이러한 사실로 선인들을 비하(卑下)할 필요도 없으며, 너무 은폐하여 무시할 필요도 없으리라고 여겨진다. 다만 이 병과 같은 악병은 모두 기피하는 난치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방법이라도 썼던 일이 있다고 본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활인원(活人院)·혜민서(惠民署) 등을 통하여, 역질이나 악병에 걸려 몸을 의탁할 곳이 없는 환자를 수용, 치료하도록 힘써 왔다.

20세기에 접어든 뒤 민간운동으로 1928년 4월에는 조선나병근절연구회(朝鮮癩病根絶硏究會)가 발족되고, 1932년 10월에는 뜻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선나병예방협회가 생겨나, 1948년 9월에는 대한나예방협회가 창립되었다. 1956년 3월에는 대한나협회로 그 명칭이 바뀌어 나병의 예방과 치료에 관련된 교육과 계몽사업은 물론, 나병이 완치된 사람의 사회 복귀 및 재활사업이 전개되어 왔다.

또, 1909년에 미국인 선교사 윌슨(Wilson, F.)이 나환자의 수용치료사업을 도입하여 전라남도 광주에서 본격적인 환자치료사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여수애양재활원(麗水愛養再活院)의 전신(前身)이 되었다. 같은 해에 미국인 선교사 어빈(Irvin, C. H.)이 동래에 부산나병원(釜山癩病院)을 설립하여 환자치료사업을 시작하였다.

1913년에는 미국인 선교사 플레처(Fletcher, A. G.)가 대구에 애락원(愛樂院)을 창설하여 구라사업(救癩事業)을 시작하였다. 또, 1916년에 소록도(小鹿島)에 자혜병원(慈惠病院)이 설립되어 약 100명이 수용, 치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제의 나병관리대책만으로는 나병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나병을 근절시키기 위한 민간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1932년에 소록도를 확장하여 약 2천 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2, 3차 확장계획에 의해 6천 명의 환자가 수용 치료를 받게 되었다.

광복 이후 수용하지 못한 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 20여개의 국공립 및 사립 나요양원과 집단마을이 설립됨으로써 1946년에는 약 2만여 명의 환자가 수용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 뒤 전국 보건소에 나병환자 외래 진료가 본격화되고 정착사업이 추진되어 나환자 외래진료소나 이동진료반이 늘어남으로써 중증 환자를 제외하고는 나병관리 방침, 또는 격리수용 치료에서 재가치료관리(在家治療管理)로 바뀌게 되었으며, 나병관리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격리수용 환자는 차츰 줄어들어 멀지 않아 나병이 근절되리라고 전망된다.

현재 의학적으로는 나병은 확실히 감염병임에 틀림없으나,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한다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으며, 전염력을 없앨 수도 있다. 전통적 나병 기피심도 합리적 보건교육을 강화함에 따라 줄어들게 되었고, 미감아동(未感兒童)들의 사회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계속하여 나병관리사업을 추진한다면 우리나라에서 나병환자가 사라질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참고문헌

『나병관리사업지침』(보건복지부, 1998)
『동양의학사』(Huard, P. 저, 허정 역,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85)
『서양보건사』(허정, 신광출판사, 1984)
『건강이라는 환상』(르네듀보 저, 허정 역, 삼성미술문화재단, 1982)
『보건소행정과 활동』(이종학, 보건문화사, 1959)
『나병』(류준, 연세대학교 출판부,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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