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중안(仲安), 호는 십주(十洲). 한진(韓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수경(韓守慶)이고, 아버지는 청천군(淸川君) 한준(韓準)이며, 어머니는 중추부도사(中樞府都事) 최정수(崔貞秀)의 딸이다.
1604년(선조 37) 생원으로 유릉참봉(裕陵參奉)에 처음 제수되었고, 1610년(광해군 2) 식년문과에 갑과에 급제, 설서·사서·정언·문학 등을 지내고, 광해군의 난정을 당하여 외직에 보임되어 재령군수를 지내고 품계가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1616년 재령군수로 있을 때에 대북파(大北派)의 음모로 일어난 해주옥사(海州獄事)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곧 석방되었으나, 10여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경기도관찰사로서 난을 평정하고 가의대부(嘉義大夫)로 승자하였다.
1628년 형조참판으로 동지의금부사를 겸하여 류효립(柳孝立)의 모반사건을 다스리고 그 공으로 정2품에 올랐다. 이해 등극사(登極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좌참찬·대사헌을 거쳐, 예조·형조·공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평소 독서를 즐겼으며 글씨에도 뛰어났다. 영사원종공신(寧社原從功臣)으로서 우의정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