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투자증권㈜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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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거래와 투자 등의 업무를 주로 하였던 금융 관련 기업체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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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증권거래와 투자 등의 업무를 주로 하였던 금융 관련 기업체의 하나.
내용

1954년 8월 한흥증권주식회사로 창립된 이래 자본시장의 개척 시기부터 기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자의 재산운용에 관련된 업무를 주로 담당해 왔다. 설립 당시에는 6·25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경제부흥을 위한 자본조달이 절실한 때였다.

외국 원조와 외국자본에 의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적은 규모나마 국내의 투자가들이 투자하고 기업가들이 직접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기여한 공로는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증권시장 기반이 취약하여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금융산업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할 수 있다.

증권시장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으므로 모험적인 기업으로 유가증권의 거래업무나 사채발행에 따른 여러 가지 업무를 수행하는 기업이다. 1983년 8월 본점을 여의도로 이전하였다가 1986년 12월에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으로 본점을 옮겼다.

1988년 5월 명의(名義) 개서 대리인을 설치(한국증권대체결제주식회사)하였고, 6월에는 기업을 공개하였다. 1990년 12월 본사를 여의도로 이전하였고, 이듬해 1월에 상호를 현재의 한일증권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1992년 3월 일본 동경에 사무소를 개설하였고, 1994년 3월 미국 뉴욕에 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1995년 2월 중국 홍콩에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1998년 2월 일본 동경의 사무소를 폐쇄하였고, 이듬해 3월 상호를 한빛증권주식회사로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 내용은 유가증권의 매매, 유가증권 매매의 중개 또는 대리, 유가증권의 인수, 증권저축, 유가증권의 매매와 관련한 신용 공여, 외국인 투자기업의 주식 또는 자본의 평가, 외국에서의 유가증권 모집 또는 매매의 주선 등의 업무였다. 관계 회사로는 주식회사 한빛은행·한일투자신탁운용 등이 있었다.

1997년 당시 총 자산은 6,247억 원, 매출액은 793억 원이며, 자본금은 761억 원이고, 종업원은 약 600여 명이 종사하였다. 1998년 당시 총 자산은 4,629억 원, 매출액은 932억 원이며, 자본금은 761억 원이고, 종업원은 약 530여 명이 종사하였다.

현황

1999년 한빛증권(주)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2년 3월 최대 주주인 한빛은행(지금의 우리은행)이 한빛증권 보유 지분에 대한 주식양도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우리금융지주(주)의 자회사가 되었다. 2002년 6월 우리증권(주)으로 상호를 바꿨으며, 2005년 4월에 엘지(LG)증권(주)과 합병되어 우리투자증권(주)이 되었다. 이후 모회사인 농협금융지주의 자회사 통합 방침에 따라 2015년 1월 우리투자증권(주)이 NH농협증권(주)과 통합됨으로써 NH투자증권(주)이 새롭게 출범하였다.

참고문헌

『회사연감』(매일경제신문사, 1999)
『회사연감』(매일경제신문사, 1998)
『한국기업총람』(한국신용평가주식회사, 1998)
『한경기업정보』(한국경제신문사, 1997)
집필자
이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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