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 한기(韓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위겸(韓撝謙)이고,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며, 어머니는 이두망(李斗望)의 딸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이 되고, 1669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1673년에는 정언이 되었다. 그 뒤 1680년(숙종 6) 지평이 되고 1682년 장령·집의를 거쳐, 교리가 되었다.
이 때 서인의 과격파 김익훈(金益勳)·김석주(金錫胄) 등이 남인의 발본색원을 위하여 남인역모설을 조작하자, 같은 서인으로서 조지겸(趙持謙) 등 소장파와 함께 그 흉계를 폭로하고 처형을 주장하였다가 이듬해 파직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인은 김익훈 등을 옹호하는 노장파 중심의 노론과 그의 처벌을 주장하는 소장파 중심의 소론으로 갈라졌다. 그는 1684년 집의로 복직되었는데, 파직과 복직을 여러 번 거듭하면서 1685년 부수찬·헌납·부교리를 지내고, 1687년 사간이 되었다. 저서로는 『시와유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