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덕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권감창사사, 안남도호부부사, 병부상서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15년(고종 2)
본관
연주(延州: 평안북도 영변)
주요 관직
권감창사사|안남도호부부사|병부상서
관련 사건
조위총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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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권감창사사, 안남도호부부사, 병부상서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본관은 연주(延州: 평안북도 영변). 장군 현담윤(玄覃胤)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 총명하고 남다른 기상이 있어 연주분도장군(延州分道將軍) 김치규(金稚圭)가 개경에 데리고 올라와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여러 번 과거에 실패한 뒤 병이 들어 고향에 돌아갔다.

1174년(명종 4)에 서경(西京)에서 조위총(趙位寵)의 난이 일어나자 절령(岊嶺: 慈悲嶺) 이북 40여 성(城)이 다 이에 응했으나 연주도령(延州都領)인 아버지와 함께 연주성(延州城)을 굳게 지켰다. 이 때 주민들의 추대를 받아 권행병마대사(權行兵馬臺事)가 되었으며, 조위총이 현덕수를 회유하기 위해 보낸 사절을 잡아죽였다.

그 뒤 다시 주민들의 추대로 권감창사사(權監倉使事)가 되었는데, 이 때 서경의 군대 1만여 명이 연주성을 포위하자 이를 쳐서 궤멸시켰다. 다시 개경에 진격했다가 패퇴한 서경의 군대가 여러 겹으로 포위해왔으나 이를 쳐서 패퇴시키고 많은 포로와 무기를 노획하였다. 왕이 전공을 포상하여 내시지후(內侍祗候)를 제수하자 글을 올려, 지후의 고신(告身)을 반납하고 과거를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듬 해 금(金)나라의 세종(世宗)이 연주성이 고군분투한다는 소식을 듣고 원군을 보내왔으나 이를 사양하며 돌려보냈다. 다시 서경의 군대가 연주성을 공격하자 또 이를 쳐서 물리쳤다. 그 공으로 현덕수는 내시지후(內侍祗候)가 되었고, 아버지는 장군이 되었다.

뒤 이어 안남도호부부사(安南都護府副使)가 되어 청렴하고 밝게 정사를 하여 관리와 백성들의 공경을 받았다. 특히 음사(淫祠: 귀신에게 제사지냄)를 싫어하여 이를 엄히 금하니 무당이 경계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내직(內職)으로 들어와 도관낭중(都官郞中)이 되었다. 그때 산원동정(散員同正) 노극청(盧克淸)이 가난하여 집을 팔려고 하였으나 팔리지 않았다. 현덕수가 노극청이 지방으로 간 사이 그의 아내에게 백금(白金) 12근(斤)에 집을 샀다. 노극청이 돌아와 9근에 산 집을 비싸게 팔 수는 없으니 3근을 돌려받든지, 그렇지 않을거면 집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현덕수가 어쩔 수 없이 3근을 돌려받고는 그 돈을 절에 시주하니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도 이런 사람들을 볼 수 있구나!'라며 탄식하였다. 이부낭중(吏部郎中)에 옮겼으나 간관의 반대로 병부낭중이 되었다.

이후 사재소경(司宰少卿)에 제수되었으나, 이 때 처모상(妻母喪)으로 문제가 생겨 파면되었다. 신종 때 다시 기용되어 전중소감(殿中少監)이 되었으며, 병부상서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치사한 후 수태부(守太傅) 최선(崔詵)과 태복경(太僕卿)으로 치사한 장백목(張百牧), 동궁시독학사(東宮侍讀學士) 고영중(高瑩中), 판비서성(判秘書省)으로 치사한 백광신(白光臣), 수사공(守司空)으로 치사한 이준창(李俊昌) 등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한가로이 유유자적하게 지냈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을 지상의 신선이라 부르고 모습을 그려 바위에 새겨서 세상에 전하였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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