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사식(士式).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홍만형(洪萬衡)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딸이다.
처음에는 송준길(宋浚吉)을 섬겼으나, 뒤에 송시열(宋時烈)과 박세채(朴世采)를 사사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세마가 되고, 내섬시주부를 거쳐, 공조좌랑을 지냈다. 그 뒤 돈녕부판관·공조정랑을 역임하고, 김천현감(金川縣監)으로 나갔다.
김천현이 군으로 승격하는 바람에 그곳에서 김천군수가 되고, 이어 충주목사에 이르렀다. 1701년(숙종 27) 김천군수로 있을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상을 당하였는데 왕후의 외종형으로 소렴(小斂)·대렴(大斂)에 입참하였다.
타고난 성격이 순후하고 인자하여 백성을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였고, 부정과 부패 다스리기를 추상같이 하여 김천군민이 믿고 따라 치적이 높았다. 어사 유명홍(兪命弘)과 관찰사 신임상(申鈓相)이 서로 그 공적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충주목사로 나가게 된 것은 충주에 세금을 거두는 것이 많았으나 교활한 아전들이 반 이상을 침식하여 창고가 비었으므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조처에서였다.
충주에 부임하여 창고를 조사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소모한 것이 심한 자를 효수(梟首)하고 다른 창고를 조사하던 중 독살당하였다. 그 뒤 범인은 잡혀서 죽음을 당하였으나 온 고을 백성들이 명관의 죽음을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