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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산(姜成山)

북한인물

 북한의 정무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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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북한의 정무원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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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1926년 평양에서 출생했다. 북한이 주창하는 ‘빨치산 2세’로 ‘만경대혁명유자녀학원’을 졸업했고, 김일성에 의해 체계적으로 육성된 중추적 핵심인물이다. 김일성 큰 이모의 아들로 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 2년때 구소련으로 유학을 가 모스크바종합대학(또는 체크 프라하공대?)을 졸업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강성산은 김일성의 인척(姻戚)으로 1955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지도원을 거쳐 자강도당 책임비서, 노동당 중앙위원, 평양시당 책임비서, 제5, 6, 7, 8,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1973년에는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1975년 정무원 부총리, 1984년 정무원 총리로 지명되었다.
강성산은 김일성의 이종사촌 동생이라는 후광(後光)을 입어 오랜 기간 동안 당 고위관료로 일하면서 명목상 내각의 최고직위인 ‘정무원 총리’직 까지 오른 북한체제의 ‘지도그룹’에 속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1956년 8월 ‘연안파’를 반대하는 반종파투쟁, 1956∼1960년 ‘쏘련파’를, 1967년박금철, 리효순 등 ‘갑산파’를, 1969∼1970년 군부(軍部) 내 김창봉, 허봉학 등을 제거하는 반종파투쟁 등에서 큰 공(功)을 세워 김일성의 개인독재와 오늘날 족벌세습체제 구축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이런 가운데 강성산은 북한당국의 이른바 ‘곁가지파동’으로 인해 1974년 6월 평양시 당 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자아비판’을 통해 평양시 당 책임비서에서 정무원 교통위원장으로 좌천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후인 1992년에는 정무원 총리, 2000년 6월 당 정치국 위원으로 올랐으나, 이후 종적이 묘연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활동사항
1970년 11월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5차 당대회에서 선출된 강성산은 이후 1973년 9월 당 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회 후보위원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는 주로 조선로동당 내 조직, 사상사업에 종사해 왔으나, 1970년대부터는 경제분야로 자리를 옮겨 수송분야 전문가로서 수송능력과 수송체계를 확립하는데 주력해 왔다. 이에 힘입어 1977년에는 정무원 부총리를, 1979년에는 철도부장을 겸직하였다. 1980년 10월조선로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8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7기 3차회의에서는 정무원 총리로 임명되었다. 이후 1986년 12월에는 동직(同職)에서 물러나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경제담당 비서로 자리를 옮겼으며, 1988년 3월에는 함경북도 당 책임비서 겸 인민위원장으로, 19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피선되었고, 1992년 12월에는 다시 정무원 총리로 보임되었다. 1998년 7월에는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에서 제외됨과 동시에 같은 해 9월에는 정무원 총리직에서도 해임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강성산은 김일성훈장, 노력훈장, 국기훈장1급(1982년)을 수여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2년)
강석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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