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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성(李宗聖)

    정치인물

     해방 이후 대법원 검사총장, 법원국장, 반민특위 검찰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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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 이후 대법원 검사총장, 법원국장, 반민특위 검찰관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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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890년 8월 15일 서울 종로 출생으로, 1909년 흥화학교(興化學校)를 졸업하고 1915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1917년 함경북도 청진부 판임관 견습으로 취직해 1918년 청진부 부서기가 되었다. 1921년 함경북도 경성군 군속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면서 1922년 시행한 제1회 변호사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해 이후 서울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1925년 경성 한국인변호사회 상무위원으로 위촉되어 간사로 활동했으며, 1925년 6월 25일부터 1926년 6월 19일까지 1년간 『시대일보』에서 ‘시대문의’라는 코너를 맡아 일반인 법률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건을 맡아 항일변론 최일선에 나서 김병로, 허헌, 이인 등과 함께 항일민족변호사로 활동했다. 1923년 11월 최초의 사회주의 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천지 필화사건’으로 기소된 박제호, 유병기에 대한 무료 변론을 맡은바 있으며, 1928년 참의부에서 활동하다 서울 동소문파출소와 백사면 주재소 등 4차례 경관파출소를 습격한 혐의로 체포된 이수흥(李壽興)의 변론을 맡기도 했다.
    1928∼1929년에는 대한통의부 소속으로 독립운동 군자금을 마련하다 체포된 유택수(柳澤秀)·유순수(柳淳秀)형제의 사건을 맡았다. 또한 1929∼1930년에는 중국에서 국공합작과 반제국주의 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여운형(呂運亨) 사건의 변호를 담당했다. 이밖에 1929년 원산 총파업을 주도하다 구속된 제5차 공산당사건 중 안상훈(安相勳) 등 8명에 대한 사건의 변호를 자청해 1931년까지 변론했으며, 1930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간도 지역 농민들의 추수 투쟁 중 배동건(裵東健) 외 275명이 기소된 ‘간도공산당 사건’의 공판을 맡아 1932~1933년까지 변론했다.
    광복 후 1945년 12월 전 조선총독부 체신국장 이토[伊藤泰吉]와 전 위생과장 아베[阿部奧]에 대한 특별심사위원회에 판사로 참여해 재판을 주관했다. 1946년 2월 14일 대법원 검사총장으로 선임되어 재임하다가 1946년 5월 법원국장으로 전임되었고, 1946년 2월 3·1운동을 기념해 ‘기미독립선언기념 시설건립기성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했다. 1947년 6월 경성법조회를 대표해 미소공동위원회 참가대표가 되었고, 같은 달 인권옹호연맹 위원장단에 선출되었다. 같은해 9월 입법사법행정 중앙선거위원 후보자로 지명되었고, 12월에는 UN 한국임시위원단 환영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정부 수립 후 1948년 12월 조직된 반민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검찰관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으며, 1949년 7월 서울변호사회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서울변호사회 회장으로서 1949년 「국가보안법 개정안」 등에 대한 건의사항을 발표하기도 했다. 1950년 1월 고등고시 본고시 고시위원으로 형사소송법 분야의 출제를 맡았으며, 1950년 5월 30일 제2대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경기도 이천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민의원 당선 후, 무소속의원을 규합해 무소속구락부를 만드는데 참여해 1950년 6월 24일 정식으로 발족시키고 의사(議事)로 선출되었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납북되었다. 1956년 2월 19일 북한에서 사망했으며, ‘평양 룡성구역 재북인사들의 묘’에 안치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신천지(新天地)」(『독립운동사자료집(문화투쟁사자료집)』,1974,국가보훈처 소장)

    • 「1928년 유택수(柳澤秀) 경성복심법원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28,국가기록원 소장)

    • 「평양룡성구역 ‘재북인사들의 묘’를 가다」(『민족21』,2004.5.1)

    • 「자유제전에 바친 체신국회 우리의 희생」(『동아일보』,1953.6.23)

    • 「오늘 신국회 역사적 개원식」(『경향신문』,1950.6.19)

    • 「간도공산당 관계자 275명 공판」(『동아일보』,1933.7.13)

    • 「예심취조 9개월만에 여운형 공판개정」(『동아일보』,1930.4.10)

    • 「수은동사건 당시 유택수는 이천에」(『동아일보』,1928.6.30)

    • 「신천지사건 공판 박제호는 형용초췌」(『동아일보』,1923.11.10)

    • 「제1회 변호사시험에 합격된 이종성씨 보성전문 출신」(『동아일보』,1922.10.10)

    • 국사편찬위원회  (www.history.go.kr)

    • 국가기록원  (www.archives.go.kr)

    •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e-gonghun.mpva.go.kr)

    • 대한민국헌정회  (www.rokps.or.kr)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4년)
    이은희(연세대학교 역사와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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