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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형암살사건(呂運亨暗殺事件)

    현대사사건

     1947년 7월 19일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 등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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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여운형암살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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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7월 19일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이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 등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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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44년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조선건국동맹’이라는 비밀독립운동 조직을 만들어 해방에 대비했던 여운형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새로운 국가 건설에 앞장섰다.
    하지만 해방 직후 극심한 좌우대립의 와중에서 여운형과 같은 중도파 세력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졌다. 그는 1946년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로 돌아간 후 김규식(金奎植)과 더불어 좌우합작운동을 벌였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좌우합작운동 실패 후 잠시 정계를 떠났던 여운형은 1947년 2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정계에 복귀하여 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성공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2차 미소공동위원회 역시 난항을 거듭하였고, 이 와중에 여운형은 1947년 7월 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달리는 차 안으로 난입한 괴한에 의해 총격을 받고 암살당하였다.
    여운형에 대한 테러는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첫 번째 테러 발생 이후 여운형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테러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테러의 강도는 더욱 강해졌고, 1947년 3월에는 결국 계동에 있는 그의 집이 폭파되기에 이르렀다. 이후에도 여운형은 1947년 5월 혜화동 로터리 근처에서 총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두 달 뒤 여운형은 결국 12번째 테러를 피하지 못하고 암살당하게 되었다.
    총격 후 범인은 곧바로 도주했다. 경호원이 범인을 추격하였지만 갑자기 등장한 경찰에 의해 오히려 범인으로 몰려 시간만 지체되고 말았다. 이후 경찰은 한지근이라는 청년을 체포한 후, 이 사건을 그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한지근은 미성년자라고 나이를 속여 사형을 면하였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난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해 끌려간 뒤 그의 생사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여운형 암살사건의 진상은 여운형이 사망한 지 27년 후인 1974년이 되어서야, 여운형을 암살하는데 가담한 4명이 신문지상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더 이상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들은, 한지근과 자신들이 어떻게 여운형을 암살했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이 설명에 따르면 한지근 등 여운형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1945년 12월 30일 발생한 송진우 암살사건의 주범 한현우(韓賢宇)의 집에서, ‘격몽의숙’ 관련자들과 교유하며 극우적인 사고를 키워나갔다. 여기서 이들은 당시 극우테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던 ‘혁신탐정단’의 양근환(梁謹煥), ‘백의사’의 염동진(廉東鎭)과 접촉하며 테러 대상을 물색하였다. 그리고 여운형이 ‘민족분열에 책임이 있는 야심가’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를 제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양근환과 염동진은 여운형 암살사건 가담자들에게 무기를 제공하였다.
    1974년에 나온 여운형 암살사건 가담자들의 주장은 사후적이고 일방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곧 그 신빙성 여부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나온 직후 이 문제를 조사한 검찰에 따르면, 이들의 설명이 여운형 암살사건 당시 한지근을 조사했을 때의 기록과 상당히 가깝게 들어맞았다고 증언하였다.
    결국 여운형 암살은 해방 직후 많은 테러 행위에 관여한 극우테러단체들이, 여운형의 좌우합작 노선에 불만을 품고 상호 연계하여 그를 제거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여운형 암살사건 가담자들이 송진우 암살범 한현우의 집을 근거로 활동했음에도 경찰에 의해 적발되지 않았다는 점, 여운형이 여러 차례 테러를 당했음에도 그 배후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 무엇보다 암살사건 발생 이후 경찰이 사건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 등을 보았을 때, 경찰 역시 이 사건을 사실상 방조했다고도 평가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5년)
    오제연(서울대학교 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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