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2년(순조 32)에 향중 사림들이 단종에 대한 의리를 굳게 지킨 서강(西岡) 김계금(金係錦)을 향사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1832년에 김계금을 기리기 위하여 김해시 한림면 용덕리에 사당을 세우고 존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0년에 후손들이 김계금의 묘소가 있는 현재의 위치에 서원을 복원하였다. 용덕리 구지(舊址)에는 김계금의 후손인 김종대(金種大)가 1928년에 쓴 유허비가 세워져있다.
김계금은 예조판서를 지낸 김돈(金墩)의 아들로 51세가 되던 1455년(세조 1)에 권지학유(權知學諭)가 되었으나 이듬해 사육신 사건으로 많은 인물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생육신에 한 사람을 더할 만하다는 뜻으로 육일거사(六一居士)라 불렀다. 사후 그의 묘역에 그때까지 주변에 나지 않았던 고사리가 자라기 시작하여, 무덤이 있는 고개 이름을 궐현(蕨峴)이라고 하고 서원 이름을 고사리 미(薇) 자를 넣은 미양서원(薇陽書院)이라고 했다.
서원 입구에 미양서원 복원 사적비가 있고 외삼문인 불이문(不貳門), 강당인 궐현재(蕨峴齋), 김계금의 일고책판(逸稿冊板)이 보관되어 있다. 본 책판은 그의 언행과 업적, 관련기록 등을 후손들이 모아서 편찬한 목판으로 1850년에 제작되었다. 표지를 포함하여 총 26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2000년 1월 25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