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상동 유적 ( )

대구 상동 지석묘군 전경
대구 상동 지석묘군 전경
선사문화
유적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돌널무덤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 · 돌널무덤 · 건물터 관련 생활유적.
개설

대구 상동유적은 2000년과 2001년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의해 2차에 걸쳐 조사된 유적이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20기, 수혈유구(竪穴遺構) 6기, 돌널무덤[石棺墓] 2기, 고인돌[支石墓] 1기, 돌덧널무덤[石槨墓] 3기, 삼국시대 주거지 15기, 수혈유구 5기, 조선시대 주거지 5기, 수혈유구 6기, 온돌 6기, 건물지 3기, 우물 8기, 집수장(集水場) 2기, 노지(爐址) 4기, 폐기장(廢棄場) 2곳, 담장지 5, 도로 1, 화장실 2기, 기타 시대미상유구 등 총 97기가 조사되었다.

역사적 변천

상동유적의 청동기시대 편년은 주거지의 형태 및 출토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Ⅰ·Ⅱ단계는 대형주거지가 설치되며, 토기문양은 이중구연단사선문(二重口緣短斜線文)과 단사선문, 구순각목문이 시문되고 대부소호(臺附小壺)로 추정되는 단도마연토기(丹塗磨硏土器)와 석촉(石鏃)의 출토유무에 따라 구분된다. 모두 무문토기(無文土器) 전기전반(前期前半)으로 비정된다. Ⅲ단계는 소형주거지가 설치되며, 무문토기 문양이 거의 소멸하며 단도마연토기는 출토된다. 시기는 전기 후반이다. Ⅳ단계는 원형주거지(圓形住居址)가 설치되며, 꼭지가 부착된 발이 주로 출토되며 횡선문(橫線文)이 시문(施文)되기도 한다. 시기는 울산 검단리와 유사한 중기 전반이다. Ⅴ단계는 송국리형주거지가 설치되며, 시기는 중기 중반 이후로 편년된다.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상동유적 온돌의 변천은 일자형 고래-ㄱ자형 고래-T자형 고래 순서로 주거지 내의 난방효과를 극대화시키면서 발전한다.

내용

상동유적은 대구분지를 관통하는 신천변 동안에 위치하는 유적이다. 주거지는 20기가 조사되었는데, 평면형태에 따라 장방형주거지, 원형주거지, 송국리형주거지로 구분된다. 장방형주거지의 내부시설은 노지와 벽처리, 기둥구멍, 불씨저장공, 바닥다짐현상 등이 확인되었다. 노지는 무시설의 수혈식 노지로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설치되었다. 벽시설은 Ⅰ-11·12호의 경우 네 벽에 1㎝ 두께의 점토를 발랐는데, 이는 사질토가 점토에 비해 견고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수분과 습기에 약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기둥구멍은 목탄의 출토상태로 볼 때 벽에 붙여 일정간격으로 세우고 그 사이를 초본류와 점토를 발라 벽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주거지는 2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형주거지는 3기로, 모두 평면형태가 다르고 산발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하나의 단위취락을 형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분묘는 고인돌 상석 1기와 돌널무덤 2기, 돌덧널무덤 3기인데, 돌널무덤은 남-북 장축방향을 따라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판석을 이용해 네 벽과 시상을 축조했으며, 묘광과 벽석사이는 강돌로 보강하였다. 돌덧널무덤은 4기인데, 2호묘는 상석(上石)이 남아 있다. 벽석은 대부분 강돌을 이용해 축조하며, 시상은 판석과 강돌을 사용하기도 한다.

무덤과 주거집단과의 관계는 3호 석관묘가 Ⅱ차 5호 주거지(장방형)를 파괴하고 축조된 것으로 보아 무덤이 조성된 시기는 송국리형주거지가 축조될 시점이나 그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삼국-통일신라시대의 유구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는 온돌이 설치된 15기의 주거지이다. 평면 장방형의 주거지 내부 한 쪽벽에 붙인 외줄고래이다. 형태는 일자형(11기), ㄱ자형(2기), T자형(2기)이다. 온돌의 시원적 형태는 외줄고래로 서기전 2세기로 편년되는 압록강·독로강유역의 토성리, 청천강유역의 세죽리·북창 대평리 유적 등이다. 삼국시대 온돌시설은 사천 봉계리, 창원 남산유적, 아차산 제4보루 1, 구의동 보루, 부소산성내 백제건물지에 외줄고래가 있다. 사천 봉계리는 돌 대신 점토를 이용하여 고래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위에 예시된 유적과 상동유적을 통해 본 온돌의 변천은 일자형 고래 - ㄱ자형 고래 - T자형 고래 순서로 발전한다.

의의와 평가

상동유적은 신천(新川)의 자연제방위에 위치하는 취락유적으로서 주거지의 형태, 유물을 통해 주거지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다. 조사결과 주거지의 형태, 유물을 통해 주거지의 변화과정을 알 수 있다. 삼국-통일신라시대에는 주거지 내부에 온돌시설인 고래가 설치되어 있어 그 변화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문헌

『대구 수성초등학교 부지내 상동유적발굴조사보고서』(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4)
『대구 수성구 상동 우방아파트 건립부지내 상동유적발굴조사보고서』(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 2002)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장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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