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골사(石骨寺)는 삼국시대인 560년(진흥왕 12년)에 운문산 일출봉(일명 함화산)에서 비허선사(備虛禪師)가 창건하였다. 석골사라는 명칭 외에도 석굴사(石窟寺), 노전사(老殿寺), 석동사(石洞寺)라고 불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의해편의 보양이목(寶壤利木)조에 의하면 보양법사(寶壤法師)가 석굴사의 비허조사와 더불어 의형제를 맺고, 봉성사(奉聖寺)와 석굴사(石窟寺), 운문사(雲門寺) 등 세 절을 왕래하며 교분을 가졌다고 한다. 773년(혜공왕 9)에는 법조(法照)가 중창했다고 한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할 때 이 지역의 대표적인 선종사찰인 봉성사와 더불어 경제적으로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고려 건국 후에는 아홉 개의 암자를 거느린 번창한 사찰이었는데 고려 말에 폐사되었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밀양부사 박진이 의병을 규합하고 밀양인 손기양과 이경승이 의병을 일으켰던 곳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인 1735년(영조 11) 함화의청(含花儀淸)이 석골사의 암자 상운암(일명 含花庵)과 더불어 중창하였으며, 1950년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80년대에 다시 세웠다. 1989년에 삼성각을 건립하였고, 1999년 극락전을 중건했으며, 2003년에는 요사를 신축하였다. 경내에는 대광전과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광전에 석조아미타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돌절구와 석탑 부재 등도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