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전하나 신빙성이 없다. 당시 이 지역은 백제의 영토였다. 자세한 내력은 확인할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까지 사세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됐는데 1750년(영조 26) 칠보면 백암리에 사는 자선사업가 모은(慕隱) 박잉걸(朴仍傑, 1676 ~ ?)이 중건했다. 운문사 추계유문(秋溪有文)의 제자인 무경자수(無竟子秀, 1664∼1737)가 주석하였다. 1718년(숙종 44) 6월에 간행한 승려 자수의 문집 『무경집(無竟集)』에는 ‘석탄암(石灘庵)’이라는 칠언율시(七言律詩)가 있다. 그 내용은 “아름다운 금사 세계에 노닐고 천지를 두루 보며 소요하네. 아래로 창해가 작게 보이고 위론 푸른 하늘이 지척이네. 절벽 누대 가엔 층층 옛 탑 떨어지는 맑은 샘물 긷네. 기림의 경물 다 담기 어려워 귀로는 더디고 흥은 한없네(特䜕金沙作勝遊 乾坤揮斥放吟眸 俯看滄海拗堂覆 仰見靑天咫尺浮 絕壁臺邊層古塔 飛泉落處汲淸流 祗林景物難收盡 歸路遲遲興更悠)”이다. 1894년(고종 31) 동학운동으로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그 뒤 태인의 거사 김수곤(金水坤, 1873∼1950)이 중건했다. 1950년 6·25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고 1973년 주지 탄월(灘月)이 어머니 송씨 부인의 유지를 받들어 1986년 불전과 종각을 조성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요사와 승방, 염불전과 삼성각을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