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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군정서(間島軍政署)

    근대사단체

     1920년대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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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20년대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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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중광단(重光團)이 3·1운동 이후 정의단(正義團)으로 확대·개편되면서 대한군정회(大韓軍政署, 약칭 군정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 약칭 군정부)로 확대 개편하였으며 임시정부로부터 대한군정서로 인준을 받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왕청현 춘명향(汪淸縣春明鄕) 서대파(西大坡)일대 50리 지역에 근거를 두었다. 총재 서일(徐一), 부총재 현천묵(玄天默), 사령관 김좌진(金佐鎭), 부사령관 김성(金星), 참모장 나중소(羅仲昭)였으며, 단원 1,500명 거의가 대종교도였다.
    군비로는 장총 1,300정, 권총 150정, 기관총 및 수류탄 80개를 확보하고 있었으며, 1920년 3월과 6월에는 총재 서일의 격려에 고무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한 결과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들은 그 근처에 무관학교를 설치하여 15세 이상 40세까지의 청장년을 징모하고 간부를 양성하였다.
    특히, 국내에까지도 조사원·파견원·특파원을 보내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며, 청년들을 설득하여 국내를 탈출, 이에 동참하게 하였다. 그 결과 50여명의 청년이 간도군정서에 가담하였고, 군세(軍勢)는 한때 3,000명선까지 이르렀다.
    현역군인으로 이 군정서에 가담하는 한국의 청장년 외에도 재향군인(在鄕軍人)에 상당한 인물을 지방 각지에도 산재하게 하여 일단 유사시에 명령만 내리면 즉각 현역화(現役化)할 수 있는 대기병력으로서의 준비마저도 치밀하게 짜놓았다. 이 단체는 간도일대에서 가장 극렬하고 병력의 규모가 큰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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