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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谷城郡)

인문지리행정지명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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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구례군, 서쪽은 담양군과 화순군, 남쪽은 순천시, 북쪽은 전라북도 남원시와 순창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05’∼127°24’, 북위 35°04’∼35°19’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47.46㎢이고, 인구는 3만 672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72개 행정리(12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지세는 소백산맥의 지맥이 중앙을 달리며, 다시 여러 지맥을 이루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부의 섬진강 유역과 북부의 옥과천(玉果川) 유역에는 분지형 평야가, 남부의 보성강 유역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있을 뿐이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부에 천마산(天馬山, 658m)·천덕산(天德山, 673m)·주부산(舟浮山, 678m) 등이 솟아 있고, 남부에 봉두산(鳳頭山, 753m)·아미산(峨媚山, 583m)·희아산(戱娥山, 764m) 등이 솟아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악산(631m)은 곡성읍과 입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곡성읍의 진산이며, 설산(雪山, 523m)도 옥과면의 진산이다. 산꼭대기에는 여제단(厲祭壇)과 옛 성터가 있고, 성터 밑에는 금샘·은샘이 있어 나그네의 목을 적셔주었다 한다.
정상의 남쪽 아래로 금당사(金堂寺)와 수도암(修道庵)이 있고, 서남쪽에 괘일산(掛日山, 497m)이 있어 등산객과 소풍객이 많이 모여든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본류인 순자강은 군의 동부를 흘러 남류하며, 그 유역에 곡성분지를 형성해 주요 농경지를 이루며, 북부에는 옥과천이, 남부에는 보성·승주를 거쳐온 보성강이 섬진강 상류인 순자강과 압록에서 합쳐져 동으로 흘러 구례로 향한다.
군의 서북부 지역은 화강암층이며,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비교적 온난한 편이나, 겨울의 기온이 낮은 편이다. 연평균기온은 13.1℃이며, 1월 평균기온 2.9℃, 8월 평균기온 24.7℃로, 내륙에 위치하기 때문에 기온이 낮은 편이다. 연강수량은 1,203.9㎜로 다우지역에 속한다. 서리는 11월부터 내리기 시작해 이듬해 4월에 끝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로서 발견된 것은 없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은 목사동면에서 발견된 칼자루끝장식·간돌칼·간돌화살촉과 입면에서 발견된 간돌칼, 그리고 겸면·목사동면·삼기면·오곡면·오산면·죽곡면·입면 등지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고인돌군 등이다. 이로 보아 섬진강과 보성강의 연변에 일찍부터 선사문화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마한의 여러 소국으로 곡성지역에 비정되는 국가는 없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로는 욕내군(欲乃郡, 혹은 欲川郡)이라 했고, 옥과지역에는 과지현(果支縣)이 설치되었다. 욕내군의 치소는 현 죽곡면 당동리로 생각되며, 과지현은 오산면 연화리로 비정된다. 통일신라의 지배하에 들어간 뒤 757년(경덕왕 16)욕내군은 곡성군으로, 과지현은 옥과현으로 개칭되었다.
곡성군에는 동복·구례·부유현 등이 영현으로 예속되었다. 742년(경덕왕 1)에 하허삼위신승(何許三位神僧)이 창건하고, 혜철(惠哲)에 의해 선종 동리산파(桐裏山派)의 중심 사찰이 된 태안사(泰安寺)가 있다.
고려 초에 곡성은 승평군(순천)의 영현이 되고, 옥과는 추성군(담양)의 영현이 되었으나, 1018년(현종 9)곡성은 나주에, 옥과는 보성에 예속되었다. 1172년(명종 2) 두 현에 모두 감무가 설치되었으며, 곡성은 1389년(공양왕 1) 왜구에 의해 읍이 함락되어 읍치를 동악산 아래로 옮겼다. 한편, 왕건(王建)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이 목사동면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곡성현과 옥과현 모두 1413년(태종 13) 현감이 설치되었고, 남원도호부의 예하 진이 되었다. 곡성은 1599년(선조 32)남원부에 합해졌다가 1609년(광해군 1)에 분리되어 다시 현이 되었다. 1570년곡성읍 교촌리에 향교가 세워졌으며, 1592년 임진왜란 때 유팽로(柳彭老)가 고경명(高敬命)의 부장으로서 금산전투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였다.
1895년의 관제개혁으로 곡성군과 옥과군으로 개칭되어 남원부에 속하게 되었다. 옥과군은 1909년창평군에 이속되어 옥산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곡성군으로 통합되었다. 이 때 구례군의 고달면도 곡성으로 이관되었다. 1905년 신정백(申正柏)이 이끄는 의병군이 남양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렸고, 1919년 3월 24일 곡성 장날을 이용해 신태윤(申泰允)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현재 봉황대에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되어 있다.
1950년 7월남원으로부터 곡성으로 침입하려는 공산군을 맞아 경감 한정일(韓楨一) 이하 경찰병력이 태안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48명이 순직하였다. 이 전투를 기리는 충혼탑이 현재 태안사 경내에 세워져 있다.
한편, 1951년 9월 30일 지리산 일대에서 준동하던 공비들이 곡성읍을 점령하기 위해 약 1,500여 명의 병력으로 기습해 3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500여 명의 공비를 사살, 곡성을 방어하였다. 오곡면에 이 싸움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충혼탑이 건립되어 있다.
1979년곡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에 석곡면 운룡리가 승주군(순천시) 주암면으로, 옥과면 송정리가 입면에, 겸면 봉산리가 옥과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오산면 연화리의 선사유적을 비롯해 곡성읍 구원리·묘천리, 목사동면 동암리·용사리·공북리·죽정리, 죽곡면 태평리·하한리·삼태리·당동리, 겸면 산정리, 삼기면 괴소리·원등리·경악리, 오곡면 침곡리·승법리 등에 고인돌군이 있고, 입면 입석리와 송전리에 선돌 등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들 유적에서 돌칼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성지로는 태봉성지·화장성지·노고성지, 죽곡면 당동리성지, 옥과면 죽림리성지, 설산고성지 등이 있으며, 석곡면 방송리에 마천목묘(馬天牧墓)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죽곡면 원달리 태안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호)의 태안사적인선사조륜청정탑(泰安寺寂忍禪師照輪淸淨塔, 보물 제273호)·태안사광자대사탑(泰安寺廣慈大師塔, 보물 제274호)·태안사광자대사비(泰安寺廣慈大師碑, 보물 제275호)·태안사천순명동종(泰安寺天順銘銅鐘, 보물 제1349호)·태안사능파각(泰安寺凌波閣,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태안사일주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태안사바라(보물 제956호)·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곡성읍 월봉리의 도림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2호)·도림사괘불(보물 제1341호) 등과 오산면 선세리의 관음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호)와 곡성가곡리오층석탑(보물 제1322호), 석곡면 석곡리의 석불입상(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28호), 죽산리의 석불입상, 고달면 백곡리의 미륵입상, 죽곡면 당동리의 석불좌상,남양리의 삼층석탑, 겸면 현정리의 석불입상 등이 있으며, 사지로는 서봉리사지·개사지 등의 절터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곡성읍 교촌리의 곡성향교, 옥과면 옥과리의 옥과향교(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09호), 오곡면 덕산리의 덕산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0호)와 용산재 및 덕양사(龍山齋·德陽祠, 전라남도 기념물 제56호), 겸면 현정리의 영귀서원, 입면 삼오리의 곡성충렬사(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 곡성읍 읍내리의 단군전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오곡면 오지리의 오강사·덕계사와 도동묘(道東廟,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호), 미산리의 무곡사, 오산면 청단리의 무후사, 입면 삼오리의 오봉사, 제월리의 귀암사, 옥과면 옥과리의 옥산사가 있다.
또한 입면 제월리에 곡성함허정(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침광정 등의 정자와 죽곡면 봉정리에 영류재(永類齋,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7호)가 있고, 옥과면 합강리에 유월파정렬각(柳月坡旌烈閣,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호)이 있다.
옥과면 옥과리에 옥과성황당목조신상(전라남도 민속자료 제2호), 죽곡면 삼태리에는 신숭겸이 말을 매었다는 계마석(繫馬石)과 그가 물을 마셨다는 신공정(申公井), 오곡면 승법리의 요지 등이 있으며, 겸면 송강리의 요지와 석곡면 죽산리에 곡성지방 특유의 삼베직조법인 곡성의 돌실나이(중요무형문화재 제32호), 낙죽장도(중요무형문화재 제60호), 입면 제월리에 군지촌정사(涒池村精舍, 중요민속자료 제155호)가 있다. 곡성읍 월봉리에는 곡성도림사계곡(전라남도 기념물 제101호)이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 옥과향교와 곡성향교가 있다. 옥과면 옥과리에 있는 옥과향교는 1392년(태조 1) 태조의 유교 중흥책의 일환으로 건립된 것으로, 봉산(鳳山)에 창건되어 율정(栗亭)에 옮겼다가 1755년(영조 31) 현감 송명흠(宋明欽)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곡성읍 교촌리에 있는 곡성향교는 1570년(선조 3)에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오곡면 덕산리에 있는 덕양서원(德陽書院)은 1589년에 설립되었는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34년 후손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또한 겸면 현정리에 있는 영귀서원(詠歸書院)은 1694년(숙종 20)옥과면 죽림리에 설립되었다가 1868년에 철폐되었고, 1960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해 재건되었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10년 공립 곡성보통학교를 시초로, 같은 해 공립 석곡보통학교, 1917년 공립 옥과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20년대 이후 많은 학교가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8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4개교와 전남과학대학이 있다.
1964년 곡성문화원이 설립되어 지역사회의 문화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곡성 지방에는 연날리기 등 어느 고장에서나 하는 놀이 외에 독특한 민속놀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곡성에는 큰 나무가 많고 대개의 마을에서는 음력 정초에 동제로 당산제를 지낸다. 제사 보름 전에 제주·유사를 뽑는데, 여기에 뽑힌 사람은 자기 집에 금줄을 치고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며, 음식을 가리고 매일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당산제 전날이 되면 당산나무 주위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쳐서 출입을 통제하며, 마을사람들은 비린내나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당일 자시를 기다려, 제주는 제수를 진설하고 마을사람들은 농악을 울리며 모여들어 당산제가 행하여진다.
농악대는 아침이 되면 온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마당밟기를 한다. 농악대가 들르는 집에서는 돈이나 곡식을 내놓고 음식을 대접한다. 이 때 거둔 전곡은 마을의 공동경비로 쓰인다.
겨울철에는 정월대보름 무렵까지 연날리기를 한다. 연은 대껍질을 얇게 깎아 창호지를 붙여 만드는데, 머리 부분은 실로 댓살을 휘어감아 반월형으로 꾸미고, 중앙에는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원형의 공간을 둔다.
연으로 연줄끊기를 해 승부를 겨루기도 하는데, 연줄에 사기가루를 섞은 풀을 발라 상대의 연줄을 끊어내는 수법을 쓰기도 한다. 이 군에서 유행되는 연의 형태는 가오리연·꼭지연·반달연·까치연·방패연 등이 주종을 이루는데,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세시풍속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이 지방에는 이곳 출신인 신숭겸과 유팽로의 말무덤전설 등이 전한다. 고려건국에 공이 큰 신숭겸은 목사동면 구룡리 뒷산 비래봉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 신숭겸이 보성강의 용탄여울에서 목욕을 하는데 큰 바위굴에서 용마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즉시 이 말을 타고 5리 정도의 거리인 유봉리의 산을 날았다. 이로부터 그 산이름을 신유봉(申遊峰)이라 부르게 되었고, 용마가 나온 바위는 용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뒤에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 죽게 되자, 용마는 땅에 떨어진 신숭겸의 머리를 물고 고향 인접지인 태안사의 뒷산에 와서 3일간을 울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곳에 장군의 무덤을 만들었는데, 매년 3월 16일 산제와 함께 신숭겸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옥과면 합강리와 종방마을 앞 내동으로 빠지는 삼거리 들 가운데 사방 6m, 높이 3m 가량의 큰 무덤이 있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때 전사한 유팽로의 말무덤으로, 사람들은 팽로말무덤이라고 부른다.
유팽로가 전사하자, 그의 말이 유팽로의 머리를 물고 300리 길을 달려 그의 생가에 가지고 와서, 그 뒤 9일간이나 여물을 마다하고 계속 울다가 굶어죽었다고 한다. 또 삼기면 청계동 여울에는 물고기가 많은데, 이것은 중이 먹었던 고기를 토하자 물고기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옛날 청계동의 건너편 마을에서 잔치가 있었는데 마침 중 하나가 지나가자 마을사람들은 중을 데려다 억지로 술과 고기를 먹였다. 중이 먹은 것을 모두 토하고 어디론가 가버린 뒤 그 마을은 부처의 노여움을 사서 차차 쇠퇴했고, 지금은 마을의 흔적조차 없다. 이밖에 「성덕산 관음사의 연기설화」 등이 있다.
이 지방은 농악이 보전, 발달되어 있는 곳으로, 민요 또한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전해지고 있다. 벼농사에 불리는 민요로 모심기소리·논매기소리·장원질소리가 전해오고 있는데, 모심기에는 전라도의 다른 지방과 같이 ‘상사소리’가 불린다. 논매기는 보통 네 번 하는데, 첫번째 매는 것을 ‘호맹이질 한다’, 두 번째 매는 것을 ‘한벌 맨다’, 세 번째 매는 것을 ‘군벌 맨다’, 네 번째 매는 것을 ‘만드리한다’고 한다. 처음 김을맬 때 호맹이질을 하면서는 「호맹이질소리」가 따로 있고, 두 번째 ‘한벌’을 맬 때부터는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소리를 한다. 마지막 ‘만드리’를 할 때는 춤을 추면서 「방개타령」을 부른다.
「호맹이질소리」는 선소리꾼이 “우리 농군 잘도나 하네.”하고 메기면, 일꾼들이 “헤헤 헤야 하하 헤이허 바하 헤에 허헌 형제 노자.”하며 받는데, 박자는 3분박이나 길이는 가사나 길게 끄는 음에 따라 3박자에서 6박자까지 일정하지 않은 박자로 이루어진다.
한벌 맬 때나 군벌을 맬 때는 선소리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김을 매는 일꾼들이 두 패로 나누어져 서로 주고받으며 소리를 한다. 처음에 “청사초롱 불밝혀라 일곡 임의 방에 놀로를 가세.”하며 한 패가 소리를 내면, 다른 패가 “나도나 가네 나도나 가네 임을 따라 나도나 가네.”하며 받는다. 3분박이기는 하지만 길이는 가사와 길게 끄는 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가사의 내용도 주고받는 것이 대구가 되기도 하나 서로 관계없는 내용을 주고받기도 한다. 군벌을 맬 때는 한 패가 “잘도나 하네, 잘도나 하네, 우리 농군 잘도나 하네.”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한 패는 “아이고 답답 설음이야.”하고 일정하게 받는다. 이 또한 3분박이나 길이는 일정하지 않다.
만드리를 하며 부르는 「방개타령」에는 ‘늦은 방개타령’과 ‘잦은 방개타령’이 있다. 이 또한 선소리꾼이 따로 있지 않고, 두 패로 나누어져 서로 주고받으며 소리를 한다.
장원질소리로는 「산아지타령」을 부르는데 3분박 4박자로 대개 중모리에 비교되는 장단으로 이루어진다. 선소리꾼이 “오동추야 달이 밝고 임의 생각 절로난다.”하며 두 장단에 메기면, 일꾼들이 “에헤 헤이 에헤 헤야 에야 뒤어 산아지로고나.”하며 같은 장단에 받는다. 선율은 「진도아리랑」과 같아 전형적인 육자배기토리로 되어 있다.
그 밖에 베를 짜면서 부르는 「길쌈노래」가 있는데, 내용은 노동에 시달리는 부녀자의 푸념과 친정부모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일반 시집살이 노래와 비슷하고, 정연한 4·4조로 이어진다. 가사의 일부를 보면 “삼을 짜세 삼을 짜세/하루에도 천백번을/손톱으로 삼을 짜세/고운베나 잘 짜보세/한올두올 짜다 보니/하루 해도 다 되었네/선녀같은 어여쁜 손/머슴손이 다 되었네…….”와 같다.
부녀자들이 강강술래를 할 때 부른 선소리도 매우 해학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후렴을 뺀 본사만 옮겨보면 “녹두채 술술 걸어놓고/사위 생각 절로 나네/걷은 치마 귀잡어 들고/오동실로만 감아 주소/앞마당에 당파 심고/뒷마당에 고초 심고/고초당초 맵다 해도/씨누같이 매울소냐/울아버지 떠다준 댕기/오빠 호령댕기 우리형님 눈치댕기/구정물에 호박씨 뜨네/간대 끝에 제비똥 깔리네…….”와 같다.
그 밖에 사랑방에서 아이들이 즐겨 부르는 「이야기 노래」와 「문열어라」·「대추야 떨어져라」·「풍뎅이 노래」 등이 전해진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섬진강과 옥과천 유역의 평야를 중심으로 한 벼농사가 주 산업이며, 그 밖에 보리·콩·고구마·잎담배 등이 생산된다. 원예작물로는 딸기·배추·고추·상추·토마토·오이·무 등을 시설 원예로 재배한다. 경지면적은 9,624㏊로 경지율은 18.4%이며, 그 중 논 6,660㏊, 밭 2,964㏊이다.
군 전체 면적의 75%가 임야이기 때문에 야산을 개발해 대규모의 왜성사과 단지를 조성하고 사과 생산에 힘쓰고 있다. 왜성사과는 곡성의 명물이 되고 있다. 당도가 높고 색깔이 좋으며, 향기가 좋고 맛도 좋은 사과로 유명하다. 옥과면 소룡리 일대가 왜성사과의 주산지이다. 기타 특산물로는 배·약대추·파시감 등이 있다.
또한 산지에서는 산삼·산수유·형개 등의 약초와 목재·신탄 및 밤·버섯·벌꿀 등의 생산이 많다. 섬진강에서는 은어와 잉어 등 담수어의 어로를, 석곡면에서는 자라양식을 하고 있다. 광공업의 발달은 미약하나 정미·양조·면직공업이 발달했으며, 죽곡면에서 규석이 채굴되고 있다.
전통 수공업으로 석곡면에서 짠 삼베를 ‘돌실나이’라고 부르고 현재도 석곡면은 돌실나이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짠 삼베는 모시와 같이 올이 가늘어서 옛날에는 궁중에 진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다른 삼베보다 고가로 판매된다.
상업활동으로는 모두 5일 정기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조선 말기까지는 읍내장·석곡장·삼기장이 있었으며, 민족항일기에 들어와서는 장의 수가 늘어나 석곡면에 월봉장, 죽곡면에 죽곡장, 삼기면에 어덕장(於德場), 옥천면에 무림장(茂林場)이 개장되었다. 현재에는 다섯 개의 장이 개장되고 있다.
곡성읍의 곡성장이 3·8일, 옥과면의 옥과장이 4·9일, 석곡면의 석곡장이 5·10일, 입면의 입면장이 2·7일, 그리고 죽곡면의 죽곡장이 1·6일에 각각 개장된다. 주로 곡물류와 면포·죽공예품·밤·그릇류 및 기타 일용잡화, 특산물인 토종꿀과 석곡면의 돌실마포가 거래된다. 군의 시장은 1970년대에 교통이 발달하면서 인근의 대도시와 일일생활권을 형성하게 되어 재래시장은 위축되고 있다.
교통은 도로가 동부의 철도와 나란히 국도선이 지나며, 남부에는 호남고속도로가 지난다. 철도망은 동부의 섬진강을 따라 2002년 개통된 복선 철도 전라선이 남부를 통과하고 있고, 역으로는 곡성역과 압록역이 있다. 오산에서 화순을 잇는 제29호 국도와 압록∼석곡 사이의 18호 국도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섬진강의 하천 경관과 주요 사찰의 산악 경관이 수려해 인근 도시로부터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주요 관광지로는 성덕산과 검장산 기슭의 관음사가 있고, 인근에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광주컨트리클럽이 있다. 동악산 기슭에는 주위의 계곡과 함께 좋은 경치를 이루고 있는 곡성읍의 도림사가 있다.
섬진강의 맑고 푸른 물을 따라 구례 쪽으로 가면 보성강이 섬진강에 합류해 백사장이 잘 발달해 있고, 주위의 경치가 수려한 압록유원지(鴨綠遊園地)에 이른다. 이곳은 경관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여러 담수어가 많기로도 유명해 낚시꾼들이 끊이지 않는다.
압록에서 보성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올라가면 계곡이 깊고 기암괴석이 가을 단풍과 함께 좋은 경관을 이루며, 경내에 많은 유물이 있는 태안사가 죽곡면에 있다. 도림사와 압록 일원에는 숙박시설·음식점·휴게시설·야영장·관광안내소 등 각종 편의시설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으며, 관광객은 특히 여름철에 가장 많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곡성읍(谷城邑)
군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52.32㎢. 인구 8,30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큰 길 위쪽이 되므로 도상면이라 하여 교촌(校村)·저전(楮田)·신평(新坪)·읍내(邑內)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산면(曳山面) 등을 합해 곡성면으로 개칭하였다가,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서부에는 경계지역에 동악산과 형제봉(兄弟峰, 657m)이 솟아 있어 비교적 높은 산지를 이루고, 북부에는 순자강(鶉子江)이 흘러 그 유역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주요 산업은 섬진강 유역 평야의 벼농사로, 이 지역 곡창지대를 이루며, 그 밖에 보리·고구마·감·사과 등이 생산되고, 딸기와 멜론이 특산물이다.
전라선이 통과해 전주·순천·여수 등과 연결되며, 이 읍을 기점으로 남원·광주·구례로 연결되는 국도가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교촌리에 곡성향교, 읍내리에 단군전, 묘천리에 옥호정(玉壺亭), 월봉리에 도림사가 있다.
도림사의 주변 계곡을 따라 열여섯 굽이의 곡류가 넓은 반석 위를 흘러 주변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읍내(邑內)·학정(鶴亭)·교촌(校村)·신월(新月)·죽동(竹洞)·월봉(月峰)·구원(舊院)·서계(西溪)·대평(大坪)·신(新)·동산(東山)·장선(長善)·신기(新基)·묘천(描川) 등 14개 리가 있다.
2. 겸면(兼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25㎢, 인구 1,9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남양리이다. 본래 옥과군에 속한 지역으로 겸방면(兼坊面)이라 하여 효문(孝門)·칠봉(七峯) 등 20개 리를 관할했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창평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면(只面)의 토점(土店)·기정(機亭) 등 14개 리와 옥산면(玉山面) 일부, 입면 일부, 수면(水面) 일부, 삼기면 일부를 병합하여 겸면이라고 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면내에는 장파봉(將破峰, 425m)을 비롯, 검장산(劍藏山, 482m)·서리봉(403m)이 있고, 남서부에는 삼기면의 불로치(不老峙)에서 발원한 삼기천이 서류하여 옥과천과 합류해 이 유역에 좁고 긴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왕골·참깨·고추·잎담배 등이 주로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사과·멜론·짚신·삼베·동중하초 등이 있다. 도로는 옥과면의 황산리로 진입한 서울∼순천간의 고속도로가 송강리를 경유해 삼기면으로 달리고, 광주∼곡성간 도로가 면의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현정리에 영귀서원이 있다.
남양(南陽)·현정(玄亭)·가정(柯亭)·평장(平章)·대명(大明)·송강(松江)·운교(雲橋)·마전(馬田)·상덕(上德)·괴정(槐亭)·칠봉(七峰)·산정(山亭) 등 12개 리가 있다.
3. 고달면(古達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94㎢, 인구 1,3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목동리이다. 본래 남원시의 지역으로 고달방(古達坊)이라 하여 대동(帶洞)·사동(社洞) 등 15개 리를 관할했는데,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해 구례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북동부에 천마산과 깃대봉이 있고, 대부분의 지역이 소백산맥의 서사면에 해당하는 산지이다. 뇌죽천(磊竹川)·고달천·두가천(杜柯川)이 천마산에서 발원해 서쪽에서 남류하는 섬진강에 흘러들며, 그 유역에 펼쳐진 목동평야(牧洞平野)는 토지가 비옥하고 관개가 양호하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잎담배·옥수수 등이 생산되고 왜성 사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딸기·멜론·옥수수·고추 등이 있다. 지하자원으로 호곡리에서 규석이 생산되며, 뇌죽리 부근의 섬진강에서는 은어가 많이 잡힌다. 1971년에 고달교가 준공되어 호곡리와 두가리를 제외한 전지역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백곡리에 미륵입상, 뇌죽리에 세조 때 김계보(金季甫)가 공북단(拱北壇)을 만들어 단종을 그리워했다는 오대정(鰲戴亭)의 옛 자리에 보인정(輔人亭)이 있고, 섬진강가의 기암절경을 이루는 등등바위는 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목동(牧洞)·뇌죽(磊竹)·대사(帶社)·백곡(白谷)·고달(古達)·호곡(虎谷)·두가(杜柯) 등 7개 리가 있다.
4. 목사동면(木寺洞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76㎢, 인구 1,500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평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목사동면이라 하여 평리(坪里)·궁두(弓頭)·하신기(下新基)·동산(東山)·용암(龍巖)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승주군 주암면 고산리(古山里) 일부지역을 신기리에 편입하였다.
비래봉(飛來峰, 691m)·희아산·아미산·신유봉 등이 솟아 있고, 유치산(酉峙山)에서 발원한 목사동천이 면의 중앙부를 북류해 북서부 경계지역을 흐르는 보성강에 흘러들며, 그 유역에 소평야가 남북으로 길게 발달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과 보리를 주로 생산하고, 특산물로는 시설오이·버섯·고랭지수박 등이 있다. 농가부업으로 양잠이 성하며, 제조업으로는 공북리에서 재생펄프를 생산한다.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신유봉 정상에 신숭겸이 용마를 타고 신유봉을 오르내리며 훈련하다 물을 마시던 샘이라는 신공정이 있다.
평(坪)·동암(東巖)·구룡(九龍)·용사(龍司)·수곡(水谷)·범계(帆溪)·공북(拱北)·대곡(大谷)·신기(新基)·죽정(竹亭)·용봉(龍鳳)·신전(薪田) 등 12개 리가 있다.
5. 삼기면(三岐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18㎢, 인구 1,8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등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곡성·담양·순천으로 통하는 세 갈래의 길이 있어, 삼기면이라 하여 명동(明洞)·용계(龍界) 등 39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창평군 겸면의 백운(白雲)·운등·학동(鶴洞)의 일부지역을 병합해 오늘에 이른다.
통명산(通明山, 764m)·국사봉(國師峰, 682m)·초악산(鷦嶽山, 717m)·대명산(大明山) 등을 비롯해 면의 동쪽과 서쪽 경계에 500∼600m 높이의 험준한 산이 솟아 있고, 섬진강의 지류인 삼기천(三岐川)이 옥과면 쪽으로 하류하면서 그 유역을 따라 산간 고랭지평야가 길게 전개되는데, 비교적 농토가 비옥하고 수원도 좋은 편이다.
호남고속도로가 서쪽 월경리에서 남쪽 경악리 쪽으로 뻗어 있으며,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참깨·면화 등을 주로 생산하며, 산지사면에서는 왜성사과의 재배가 성하고, 비육우 사육 및 양잠도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시설오이·버섯·고랭지수박 등이 있다.
제조업으로는 시멘트 가공업과 면직물 위주의 섬유업이 있다. 도로는 광주·순천·곡성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고, 관광지로는 통명산·유풍관광농원·눈썰매장 등이 있다. 문화유적은 원등리에 반공투사의 영령을 추모하는 충혼비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원등(院嶝)·월경(月境)·괴소(槐所)·의암(儀巖)·금반(金盤)·청계(淸溪)·농소(農所)·노동(蘆洞)·수산(水山)·근촌(根村)·경악(敬岳)·금계(金鷄) 등 12개 리가 있다.
6. 석곡면(石谷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18㎢, 인구 2,5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곡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연동(蓮洞)·여운(如雲)·전기(田基) 등 37개 리를 관할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봉전리 일부 지역을 승주군 주암면에 할양하고, 주암면의 대구리(大九里) 일부 지역을 편입해 오늘에 이른다.
통명산을 정점으로 남쪽으로 달리는 산맥이 면의 북부에 국사봉을 이루고, 동부와 서부에는 장군봉(將軍峰, 515m)·한동산(漢同山) 등 400∼500m 높이의 산지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그 사이를 보성강의 지류가 남류하면서 유역에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석곡천(石谷川)과 온수천(溫水川)이 남류해 보성강으로 흘러드는 유역에 발달한 석곡평야는 토지가 비옥하고 관개가 양호해, 곡성군의 세 평야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대마를 주로 생산하며, 죽산리·온수리·염곡리 일대는 삼베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이 지방에서 만들어진 돌실마포[石谷麻布; 돌실나이]는 한산모시보다 가늘고 고와서, 국내 최고의 마포로 알려져 있다. 특산물로는 토하젓·흑돼지·버섯·부추·두릅 등이 있다.
면의 중앙부에는 호남고속도로와 국도가 관통하고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능파리에 충무공 이순신이 쉬어갔다는 능파정의 옛터와 오로당유허비(五老堂遺墟碑)가 있으며, 석곡리의 석조여래입상, 염곡리의 효자문, 방송리의 마천목묘, 구봉리의 충렬문(忠烈門), 봉전리의 반구정(伴鷗亭) 등이 있다. 그리고 반구정 부근의 강가에는 돌실유원지가 형성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석곡(石谷)·능파(凌波)·덕흥(德興)·당월(堂月)·방송(芳松)·연반(蓮盤)·죽산(竹山)·온수(溫水)·염곡(念谷)·유정(柳亭)·구봉(九峰)·봉전(鳳田) 등 12개 리가 있다.
7. 오곡면(梧谷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86㎢, 인구 2,11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지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오지면(梧枝面)이라 하여 대리·침곡 등 10개 리를 관할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곡면(牛谷面)의 묘천·승법 등을 포함한 9개 리와 예산면의 대리(大里) 일부, 도상면(道上面)의 신흥리와 죽곡면의 오릉동(五陵洞) 일부를 병합해, ‘오지’와 ‘우곡’의 이름을 따서 오곡면이라 하였다.
곤방산(困芳山, 715m)·주부산·천덕산 등 높은 산이 많아 대부분 산간지역으로 임야가 많으며, 북부 오지리와 승법리에 평야가 있을 뿐이다. 서부 경계지역에는 섬진강이 남류해 남쪽의 압록에서 보성강과 합류한다. 구성리에는 도내 굴지의 저수지인 구성제(龜城堤)가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콩 등을 재배며, 산지에는 당귀·생지황 등 생약재가 생산되고, 사슴을 사육하는 목장도 있다. 특산물로는 수박·약대추·포도·산야채 등이 있다. 제조업으로는 섬진강변의 모래를 사용한 콘크리트제품의 제조가 활발하여, 오지리에서는 전신주 및 건축재를 생산하고 있다.
토속음식으로 은어회와 메기매운탕이 유명하다. 교통은 남원∼순천간의 국도가 지나며, 곡성역과 주변에 압록역이 있어 철도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유적은 덕산리에 덕양서원·덕산사·산앙사, 미산리에 무산사(武山祠)·무곡사(武曲祠), 오지리에 덕계사(德溪祠)·오강사(梧岡祠), 승법리에 충의탑(忠義塔)이 있다.
압록은 관광지로 유명하며, 압록의 귀범(歸帆)은 곡성팔경의 하나이다. 또 심청테마마을·섬진강 기차마을 등이 있다.
오지(梧枝)·덕산(德山)·침곡(寢谷)·송정(松亭)·봉조(鳳鳥)·압록(鴨綠)·미산(彌山)·승법(承法)·명산(明山)·구성(龜城) 등 10개 리가 있다.
8. 오산면(梧山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6.56㎢, 인구 1,6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동리이다. 본래 옥과군에 속한 지역으로 화석면(火石面)이라 하여 사상(沙上)·삼봉(三峰) 등 30개 리를 관할했는데, 1908년 행정구역 개정에 의해 창평군에 편입되어 화면(火面)이라고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옥산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그 뒤 1946년 면민의 요청에 의하여 화산면(火山面)으로 개칭했다가 1949년에 다시 오산면으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지봉(梧枝峰, 482m), 차일봉(遮日峰)·기우산(騎牛山)·무이산(武夷山)·꾀꼬리봉·검장산(劍藏山) 등이 있고, 대부분의 지역이 300∼500m 높이의 산지로 되어 있다.
선세리 관음사골에서 발원한 오산천이 면의 중앙부를 북류하면서 옥과천에 이르는 유역에 소규모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잎담배가 생산되며, 왜성 사과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연화리에서 인삼이 재배된다.
오동나무가 특산물이며, 제조업으로는 섬유와 시멘트제품이 제조되고 있다. 교통은 옥과∼동복을 잇는 국도가 지나 편리하지는 않다. 문화유적은 가곡리의 오층석탑과 석장승·자문이 있으며, 선세리 성덕산에 성덕처녀가 관음보살을 모셔다 지었다는 관음사가 있고, 경내에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머리 부분만이 남아 있다.
또한 청단리에는 노거수인 이팝나무와 무후사(武侯祠)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봉동(鳳洞)·율천(栗川)·단사(丹士)·조양(朝陽)·선세(善世)·가곡(柯谷)·청단(靑丹)·연화(蓮花)·운곡(雲谷) 등 9개 리가 있다.
9. 옥과면(玉果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95㎢, 인구 4,650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옥과리이다. 본래 옥과군 지역으로 옥과읍내가 되므로 현내면이라 하여 죽림(竹林)·상당(上堂)·지동(智洞)·이문(里門) 등 1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08년에 창평군에 편입되어 옥산면(玉山面)이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면의 12개 리와 지면의 마전 일부, 입면의 노동 일부를 병합해 곡성군에 편입되어 옥과면이라 개칭하였다. 1983년송전리가 입면으로, 겸면 2개 리도 입면으로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서쪽의 설산이 지맥을 북동진해 옥출산(玉出山)을 이루는 북서부와 동남부는 산지지역이다.
삼기면 불로치에서 발원한 삼기천과, 오산면 성덕산에서 발원한 오산천이 무창리에서 합류, 옥과천을 이루고 옥과천은 다시 섬진강으로 흘러들며, 그 유역에 옥과평야가 넓게 발달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참깨·고추를 주로 생산하며, 소룡리에는 왜성 사과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닥나무·감·송이버섯·도토리묵 등의 토산물이 생산되고 있으며, 비육우 사육이 많다. 지하자원으로는 규석이 생산된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가 면의 남부를 지나며, 지방도와 구도가 지나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옥과리의 옥과향교·옥산사(玉山祠), 합강리의 유월파장군정렬비(柳月坡將軍旌烈碑)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 전남과학대학이 있다.
옥과(玉果)·죽림(竹林)·이문(里門)·설옥(雪玉)·율사(栗寺)·무창(武昌)·주산(舟山)·수(水)·소룡(巢龍)·합강(合江)·황산(凰山) 등 11개 리가 있다.
10. 입면(立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06㎢, 인구 2,7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매월리이다. 본래 옥과군 지역으로, 선돌이 있다고 해 입석(立石), 또는 입평면(立平面)이라 하여 내금(內金)·외금(外金) 등 28개 리를 관할했는데, 1908년창평군에 편입되어 입면이 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라북도 남원군 소견곡면의 방산리(芳山里)와 신기리(新基里)의 각 일부지역을 병합해 곡성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옥과면 송전리가 편입되었다.
동·서·남부경계는 형제봉·마산봉(馬山峰)·서리봉 등을 비롯한 400∼600m 높이의 경사가 급한 산지로 형성되어 있고, 북부경계에는 섬진강이 동류한다. 겸면 산정리에서 발원한 창정천(昌亭川)은 삼오리와 입석리를 관류하면서 입석평야를 이루며, 형제봉에서 발원한 한 지류는 약천제(藥川堤)를 거쳐 매월리와 서봉리에 이르면서 서봉평야를 이루고, 창정천과 합류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땅콩·수박·도라지 등이 주로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딸기·멜론·사과버섯 등이 있다. 교통은 지방도가 지나지만 편리하지는 않다. 문화유적은 삼오리의 충렬문·오봉사(梧峰祠), 제월리의 구암사(龜巖祠)·함허정(涵虛亭)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매월(梅月)·흑석(黑石)·대장(大壯)·약천(藥川)·만수(萬水)·금산(琴山)·서봉(棲鳳)·제월(霽月)·창정(昌亭)·입석(立石)·삼오(三梧)·송전(松田) 등 12개 리가 있다.
11. 죽곡면(竹谷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3.40㎢, 인구 2,030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태평리이다. 본래 곡성군 지역으로 대실의 이름을 따서 대실(大實) 혹은 죽곡면이라 하여 상한(上汗)·하한(下汗)·조사(助沙)·고치(古致) 등 4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한·고치·유봉 등을 관할하였다.
면의 동부에는 봉두산과 상한산(上汗山, 525m), 서부에는 통명산과 장군봉, 남부에는 비래봉과 화장산(華藏山, 525m), 북부에는 천덕산과 주부산 등이 솟아 있어, 전체면적의 90%가 임야이며, 보성강과 그 지류인 죽곡천이 흐르는 유역에 협소하게 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보리·고추·참깨 등이 생산되며, 토속음식으로는 도토리묵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나무밭이 많고, 제조업으로 한지가 생산되며, 지하자원으로는 원달리에서 규석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표고버섯·쌀엿·고로쇠물·한봉·오이·더덕 등이 있다.
교통은 철도의 압록역이 있으며, 그 주변에 국도가 교차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원달리의 태안사·신숭겸장군비각, 삼태리의 신장군계마석(申將軍繫馬石) 등이 있으며, 태안사 내에는 많은 유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태평(太平)·화양(華陽)·봉정(鳳亭)·신풍(新豊)·유봉(留鳳)·동계(桐溪)·원달(元達)·연화(蓮花)·용정(龍亭)·하한(下汗)·남양(南陽)·고치(古致)·삼태(三台)·당동(堂洞) 등 14개 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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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이영택|이영화
개정 (2009년)
이영화(동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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