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연대 미상의 고대가요. 영신군가(迎神君歌)·구하가(龜何歌) 또는 구지봉영신가(龜旨峰迎神歌)라고도 부른다. 원가(原歌)는 전하지 않으나, 관련설화와 4구체의 한문으로 번역된 것이 ≪삼국유사≫권2 가락국기조에 전한다.
이에 의하면 서기 42년 3월 계욕(禊浴)의 날에 북쪽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로 부른 것이 있었다. 무리 200∼300명이 거기에 모였는데, 사람의 소리 같기는 하지만 그 형상은 나타나지 않고 소리만 내어, “여기에 누가 있느냐?”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구간(九干) 등이 “우리가 있소.”라고 대답하자, “내가 있는 곳이 어디냐?”하고 재차 물어오자, 구간이 다시 “구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다시 “하늘이 나에게 명하기를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워 임금이 되라 하였기에 여기에 내려왔다. 그러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봉우리를 파서 흙을 모으면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만일 내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라.(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이에 너희들은 매우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구간들이 그 말과 같이 행하고 모두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러자 얼마 후 자주색 끈이 하늘로부터 드리워져 땅에 닿았다. 그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자(金合子)가 싸여 있었다. 열어보니 그 속에는 해와 같이 둥근 황금빛 알 여섯이 있어 이를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고 기뻐하여 함께 수없이 절을 했다.
조금 있다가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我刀干)의 집으로 돌아와 평상[榻]위에 두고는 무리들이 모두 흩어졌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모여 금합자를 열어보니, 알 여섯개가 모두 동자로 변했는데, 용모가 매우 준수하였다고 한다.
<구지가>와 그 신화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신화를 영신제의(迎神祭儀)로 보고 신탁의식(神託儀式)·희생의식·영신의식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고 논의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등극제의로 보고 신탁의식·귀복의식(龜卜儀式)·등극의식의 세 단계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등극의식은 다시 하강-격리-재수용-등극의 과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구지가>는 이 세 단계 가운데 제2 단계에서 신탁에 의해 불린 주가(呪歌)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이 가요의 성격을 밝히는 데는 가창 뒤의 결과나 가사 자체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산문전승 중에 들어 있는 ‘굴봉정촬토(掘峰頂撮土)’라는 행위전승의 풀이도 중요하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① 가래질과 타작을 시늉한 농부의 동작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는 견해가 있었는가 하면, ② 제의를 베풀 때 신이 내려와 앉을 신좌를 만드는 과정의 행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③ 거북 토템사회의 제사에서 나타난 거북 토템을 모방하여 만든 극행위(dr○mena)로 보기도 하고, ④ 극행위로써 주술·종교적인 도신행위(禱神行爲)를 흉내낸 가무로 보는 입장도 있다.
‘굴정봉출토’를 ⑥ ≪위지≫ 동이전의 “그 춤은 수십명이 같이 일어나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또는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한다.”라고 한 기록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하여 집단 가무의 양상을 기술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이외에도 ⑦ 신탁 예언에 맞추어 그것이 실현되기를 바라면서, 예언적으로 모방하는 형태의 희생의식의 무용으로 보거나 ⑧ 철기문화를 가진 유이민집단이 토착집단과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토착집단의 성역을 훼손하는 행위로 파악하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구지가>의 가 가운데 연구대상이 되어온 어사(語辭)는 ‘거북[龜]’과 ‘머리[首]’와 ‘구워먹겠다(燔灼而喫也)’ 등이다.
이들 어사를 은유 내지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거북’을 ‘검[神]’ 또는 토템으로서의 거북으로 풀이하거나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수신의 사자인 제의적 상관물로 풀이하기도 한다. ‘머리’는 수로(首露)·우두머리·남근(男根)·구지봉(龜旨峰)으로 해석된 바 있다.
‘구워먹겠다’에 대한 해석은 네 가지로 집약된다. ① 토템사회에서 그네들의 토템인 거북을 죽여 향연을 갖는 제의의 가요적 투사(透射)라고 보는 입장이 하나이다.
② 남성성기의 불합리한 욕망의 대두에 대한 보다 강한 거세욕구(去勢欲求)의 표현으로서 청정의식(淸淨儀式)을 상징하였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혹은 ③ 우두머리 선정의 점괘인 거북의 조짐[龜兆]을 얻기 위해 계속 굽겠다는 위압적 구절로 보기도 했으며, ④ ‘번작(燔灼)’이 나타내는 이미지는 원시인들의 격렬한 욕정이 반영되어 여성성기를 은유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구지가>의 성격을 ① 영신제(迎神祭)의 절차 중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의식의 무용에서 불려진 주가(呪歌)라는 견해가 있다.
② 안산(安産)을 촉구(促求)하거나 농산물의 풍요를 기원하고, 기우하는 주가가 부가장제(父家長制)의 확립에 따라 선행하던 원시 모가장제(母家長制)가 쇠퇴할 당시의 애환이 서려 있는 민요라고 파악하기도 하였다.
일부 학자들에서는 <구지가>의 성격을 ③ 잡귀를 쫓는 주문이나 ④ 원시종교생활에서 볼 수 있는 원시적 기도로서의 주원사로 보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⑤ 거북이 머리를 내민다는 것은, 토템의 출현과 수로의 탄강(誕降)이 상응하여 거북 토템이 머리를 내밀듯 상서로운 수로왕의 탄생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보아 어디까지나 무속적·주술적 신요(神謠)라는 견해도 있다. ⑥ 가락국의 우두머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려진 귀복가(龜卜歌)라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⑦ 거북 토템집단이 장차 그들의 통치자로 내정된 영아(嬰兒)의 출산제의 겸 영신제의에서 정상 출산을 촉구하는 열망의 극한적 표현으로 불리어진 주사(呪詞)라라고 파악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⑧ 기우제를 올릴 때 불려진 주가라는 견해까지 <구지가>의 성격에 대해서 제기되어 온 견해는 해석상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가요는 원시시대 또는 기원전 6, 7세기 경부터 가창되었으나 시대의 추이에 따라 의미내용에 변화가 있었으리라 보는 입장에서는, ① 처음 <구지가>가 임금이 나타나 주셨으면 하는 뜻으로 부른 축도가였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구지가>는 어사(語辭)의 의미 전이과정을 거쳐 제사에서 부르는 의식가(儀式歌:祭歌)가 되었고, 다시 주력(呪力)을 불러일으키는 주가로 형성되는 과정에 있던 가요라는 것이다.
② <구지가>가 애초에는 원시인들의 성욕에 대한 강렬하고도 소박한, 즉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불렸다는 입장도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구지가>가 차차 시대의 변화에 따라서 일종의 주문적인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건국신화에까지 끼어든 것으로 본다.
이외에도 ③ 원가시대(原歌時代)에는 자기 집단의 무한한 생생력(生生力)을 주원(呪願)하던 도가(蹈歌)이던 것이 수로왕 탄강시대에는 신군을 맞이하는 노래로 변이되고, 후대의 ‘해가시대(海歌時代)’에 와서는 ‘원가시대’의 생생력을 상징하는 기능이나 수로왕 탄강시대의 영신군(迎神君)이라는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주술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여 <해가 海歌>와 결부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으로 ④ 가락국 선주민들의 토착적 제의에서 쓰이던 일종의 풍요주술 형태이던 <구지가>를 시조신으로서의 수로왕을 맞기 위한 영신제의에서 영신주술의 형태로 바꾸어 사용한 것이라 보는 견해 등이 있다.
그리고 이 가요의 뜻과 표현형식이 비슷한 것에 신라 성덕왕 때 해룡에게 끌려간 수로부인(水路夫人)을 구출하기 위해 부른 <해가>라는 노래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