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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軍威郡)

인문지리행정지명

 경상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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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군.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은 영천시, 서쪽은 구미시, 남쪽은 대구광역시와 칠곡군, 북쪽은 의성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8°24'∼128°53', 북위 36°00'∼36°19'에 위치한다. 면적은 614.25㎢이고, 인구는 2만 412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180개 행정리(92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군위군 군위읍 동부리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군의 최남단에 팔공산(八公山, 1,193m)이 우뚝 솟아 있어 대구광역시와 경계를 이루며, 지맥(支脈)이 동북쪽으로 뻗어 청송군·영천시와의 경계를 따라 분수령을 이룬다. 군의 동부인 고로면 일대는 선암산(船巖山, 879m)·아미산(峨嵋山, 418m)·조림산(鳥林山, 638m)·매봉(800m)·방가산(756m)·화산(華山, 828m) 등 높이 600∼800m의 높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부는 베틀산(369m)·적라산(赤羅山, 252m)·응봉산(鷹峰山, 279m) 등 200∼300m의 저산성 구릉지이고, 북부는 100∼200m의 낮은 구릉지이다.
위천(渭川)은 청송군 경계지역에서 발원해 고로면·의흥면·우보면을 지나 북서류하다가 가산(架山) 북사면에서 발원해 효령면을 북류하는 사창천(社倉川)과 팔공산 북사면에서 발원해 부계면을 관통하고 효령면을 거쳐 북류하는 남천(南川)을 효령면 병수리에서 합한 뒤 다시 북류하다가 의성군 금성면에서 발원한 동천(東川)을 합류해 군의 중앙부를 북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의 본류로 흘러든다.
하천 양안에는 효령·군위·의흥·소보 등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다. 남천유역은 효령면과 부계면이며, 하곡저에 형성된 좁은 충적평야는 경제적 중심지로서 하천 양안을 따라 사과재배가 활발하다.
내륙산간에 위치하고 있어 한서의 차가 심하며, 강수량이 적다. 연평균기온 14.8℃, 1월 평균기온 0.8℃, 8월 평균기온 25.8℃이며, 연강수량은 1,222.4㎜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고고학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잘 알 수 없지만, 청동기시대 이후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것 같다. 그 결과 일찍부터 소국(小國)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변진 24국 중 하나인 여담국[(如湛國)이 이 곳에 비정되고 있다.
그 뒤 이 국가의 행방은 알 수 없고, 이 지역은 신라의 영역으로 들어가 노동멱현(奴同覓縣)주 01)·모혜현(芼兮縣)주 02)·부림현(缶林縣)주 03) 등으로 편제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노동멱현은 군위현으로, 모혜현은 효령현(孝靈縣)으로 개명되어 숭선군(嵩善郡)주 04)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후백제와 고려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초기에는 왕건의 세력권에 들어가 고려의 군대가 이 곳에 주둔하였다. 928년(태조 11)견훤이 경졸(勁卒)을 뽑아 부곡성(缶谷城)주 05)을 공격해 군사 1,000여 명을 죽이고, 장군들을 포로로 잡기도 하였다.
고려 통일 이후 점진적인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군현의 이합이 잦았는데, 이 지역은 독립 현을 구성하지 못하고 계속 또 다른 군현에 소속되었다. 곧 군위·효령·부계현은 1018년(현종 9) 지방제도 개편 때 모두 상주에 예속되었다가, 1143년(인종 21)일선현(一善縣)주 06)에 이속되어 고려 말까지 유지되었다.
현재의 의흥면지역은 고려 이전의 유래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고려 초에 의흥군이 되어 1018년에 안동부에 속해 고려 말까지 유지되었다. 고려 후기에 속현이 주현으로 승격될 때인 1390년(공양왕 2)군위현과 의흥군에 감무가 파견되어 비로소 독립행정단위를 구성하게 되었으며, 각기 효령현과 부계현을 속현으로 삼았다.
한편, 1284년(충렬왕 10) 국가에서는 국사 일연(一然)을 위해 의흥현(義興縣) 화산(華山)에 있는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논밭 100여 결을 하사함과 아울러 그를 주지로 임명하였다. 그 뒤 일연은 이곳에서 입적할 때까지 5년간 살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시 군위현·의흥현으로 정리되어 현감이 파견되었고, 그 뒤 조선 후기까지 큰 변동이 없었다. 조선 전기 이 곳의 토지는, 군위는 척박했고 의흥은 비옥·척박이 반반이었으며, 풍속은 검솔(儉率), 둔박(鈍朴)했다고 한다. 호구수는 『경상도지리지』에 따르면 군위가 390호 2,577명, 의흥이 424호 3,392명이었다고 한다.
또 이 지역은 독립행정단위를 이룬 조선 전기부터 부계홍씨(缶溪洪氏)·부계예씨(缶溪芮氏)가 상경종사(上京從仕)하면서 홍귀달(洪貴達)·예승석(芮承錫)을 위시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이 곳 출신의 장사진(張士珍)·이영남(李榮男)·홍위(洪瑋)·홍억제(洪億濟) 등이 의병을 크게 일으켜 왜적토벌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1895년(고종 32) 소지역주의가 채택되어 23부제가 실시되자, 두 지역 모두 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했다가 다음 해에 13도제의 실시에 따라 4등군으로서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의흥군이 폐지되어 오늘날의 군위군을 형성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항일의병투쟁이 전개되자 이 지역 주민들도 많이 참여해 항일투사 이현섭(李鉉燮)을 배출하고, 1919년 3·1운동 때에는 3월 25일 의흥장날을 기해 수백 명이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73년선산군 산동면 도산동이 소보면에, 의성군 금성면 광현동이 군위면에 편입되었으며, 1979년군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에는 부계면 고곡동·매곡동이 효령면에, 산성면 원산동·금양동이 의흥면에 편입되는 등의 행정관할구역의 조정이 있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이(里)로 명칭 변경했으며, 1989년 1월 1일소보면 대흥리가 군위읍에 편입되었다. 이후 1991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부계면 대율리가 대율1,2리로 분리되어 1읍 7면 179리를 관할하게 되었고 1996년 3월 13일에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군위읍 서부1리가 서부1,3리로 효령면, 고곡1리가 1,3리로 부계면 남산리가 남산1,2리로 각각 분리되어 1읍 7면 182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선사시대 유물로는 효령면 장기리에서 돌칼·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산성으로는 고로면 화북리의 화산산성(華山山城, 경상북도 기념물 제47호)을 비롯해 부계면 남산리의 공산성성터, 군위읍 하곡리의 선방산성터, 의흥면 원산리의 성산성터, 고로면 장곡리의 경림산성터, 효령면 성리의 성재산성 등이 있으며, 특히 화산산성 북문인 홍예문은 정교한 무지개모양을 이룬다.
불교문화재로는 제2석굴암이라 부르는 부계면 남산리의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을 비롯해 군위삼존석굴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8호)·군위삼존석굴모전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1호)과 군위대율동석불입상(보물 988호), 고로면 화북리의 군위인각사지(軍威麟角寺址, 사적 제374호)·인각사보각국사탑및비(麟角寺普覺國師塔·碑, 보물 제428호), 낙전리의 압곡사(鴨谷寺), 군위읍 상곡리의 지보사(持寶寺)와 지보사삼층석탑(보물 제682호), 하곡리의 군위하곡동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3호), 소보면 달산리의 법주사(法住寺)와 법주사오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호)·군위법주사왕맷돌(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2호), 위성리의 군위위성동석조약사여래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효령면의 군위불로리마애보살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5호), 고로면 낙전리의 압곡사선사영정(鴨谷寺禪師影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9호), 의흥면 지호리의 수태사(水泰寺)와 읍내리의 오층석탑, 우보면 달산리의 신흥사(新興寺), 산성면 화본리의 군위화본동오층석탑(軍威花本洞五層石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6호)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군위읍 동부리의 군위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85호), 의흥면 읍내리의 의흥향교대성전(義興鄕校大成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8호), 부계면의 군위대율리대청(大廳,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을 비롯해 군위읍 외량리에 송호서원, 내량리에 양천서원, 대북리에 남계서원·북산서원, 우보면 달산리에 봉강서원, 효령면 장군리에 제동서원, 부계면 남산리에 양산서원·문양서원과 남암 등의 서원이 있었다.
또한 소보면 내의리의 양암정(兩巖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6호), 소보면 봉황리의 광석재(廣石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4호), 부계면 대율리의 상매댁(上梅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57호), 군위읍 외량리의 칠탄숙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5호)이 있다.
이 밖에 부계면 남산리에 휘찬여사목판(彙簒麗史木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군위읍 외량리에 남양홍씨세보(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3호), 부계면 대율리에 백원첩(白猿帖), 창평리에는 500여 년 전에 축조한 남방지(藍坊池)가 있으며, 조선영조의 글을 보관하고 있는 의흥면 파전리의 어서각(御書閣), 김유신(金庾信)의 위패를 모신 효령면 장군리의 장군당, 군위군청 뜰의 척화비 등이 있다.
보호수로는 효령면 성리의 노송, 부계면 남산리의 은행나무, 의흥면 이지리의 느티나무, 우보면 나호리의 팽나무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군위향교·의흥향교·효령향교가 있었으나, 현재는 군위읍 동부리에 군위향교와 의흥면 읍내리에 의흥향교가 있다. 서원으로는 남계정사(南溪精舍)라고 부르던 남계서원이 1868년 전국 서원 정리 때 서당으로 격하되었고, 송호서원(宋湖書院)은 철폐되었다.
신교육기관으로는 민족항일기에 공립으로 세워진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있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7개교, 중학교 5개교, 고등학교 3개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도서관 2개소와 군민회관이 있으며, 군민회관은 문화회관과 박물관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중단되었던 박시놀이가 1984년부터 다시 행해지고 있다.
군위군은 과거에 초등학교로 쓰여진 (구)장군초등학교 건물을 이용하여 경북대학교와 연계하여 경북대 자연사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곳은 먼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자연의 역사를 다양한 전시자료를 통해 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용해 체험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군위도립도서관과 군위군립도서관은 총 7만 여권의 도서와 2,000여 점의 자료를 관리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이 고장에는 ‘박시[搏歲]놀이’라는 특이한 민속놀이가 전한다. 이 놀이는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던 시절에 보(洑)를 만들어 놓고 물 대는 순서를 정하기 위해 양쪽 마을 남자들이 하던 시합으로 농한기인 정월에 열렸다.
양쪽 마을 대표끼리 미리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양쪽이 모두 장정을 선발한다. 먼저 한쪽 마을 사람 한 명이 상대 마을로 가서 방자하고 거만하게 길을 걸어가면 상대 마을 사람들이 이 사람을 때려서 돌려보내 싸움이 시작된다.
옆으로 늘어선 장정들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떼를 지어 어깨로 상대편 대열을 밀어붙이는 것인데, 밀리는 편이 지게 된다. 힘 대결을 벌이는 것이므로 부상자가 많이 나오지만 개인의 희생을 감수하고 최선을 다한다. 이긴 쪽은 진 쪽으로부터 술과 음식을 대접받으며, 한 해 동안 보의 물을 우선 사용할 권리를 얻는다.
또한 의흥면에는 ‘지애밟기’라는 부녀자들의 놀이가 있는데, 안동의 놋다리밟기가 의성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정월보름에 주로 행해진다. 이 밖에도 장치기·지신밟기·줄다리기 등이 있다.
이 고장의 동제는 주로 정월보름에 시행되며, 동신제라고도 부른다. 이 동제는 성실하지 못하게 거행하면 마을에 나쁜 질병이 유행하고, 가축이 번식이 안 되고, 수재·화재가 일어나며, 흉년이 든다고 전해온다.
지난 일 년간 자기의 가족이나 친족이 사망하지 않고, 타인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정결한 남자 한 명을 읍장이나 마을의 유지가 제관으로 지명, 선정한다. 제관은 5일 전에 손톱과 머리를 깎고 매일 목욕을 하며, 육류와 술·담배를 금지하고, 매일 옷을 갈아입고 근신한다. 모든 동민은 3일 전부터 음주를 금하고 동제를 위해 정성을 다한다.
제단 부근과 제관집은 3일 전부터 청소를 하고, 제를 지내는 날 아침에는 금줄을 치고 적토를 뿌려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한다. 제물은 제관이 시장에 가서 부정하지 않은 상인으로부터 구입하며, 경비는 모든 동민이 골고루 분배해서 충당한다. 제를 지낸 아침에는 모든 동민이 음복을 하며, 이 때 대동회를 열기도 하는데, 동네의 풍기를 교화하고 농사에 대한 의논을 하며 기타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담과 효자설화,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가 많이 전한다. 효령면의 장군동에는 김유신과 관련된 지명유래담이 전한다. 「호랑이를 잡은 효자설화」는 고려 때의 이야기이다.
이 고장에는 호환(虎患)이 속출해 조정에서는 호랑이를 잡으려 애를 썼으나 헛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살던 유공신(柳公信)이라는 선비가 백성을 구하고자 호랑이를 잡으러 나섰다가 오히려 호랑이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아들 누백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서서 잠든 호랑이를 잡고, 그 자리에 묘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하루는 누백의 꿈에 유공신이 나타나 시를 읊었는데, 시묘가 끝난 뒤 누백이 응시한 과거의 과제(科題)가 그 시의 한 구절이었다. 그리하여 누백은 장원급제해 의종의 측근에서 나라를 위해 충성하였다.
「호랑이로 변한 효자설화」도 있다. 부계면 대율동 한밤에는 홍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효성이 지극한 효자가 있어 홍효자라 불렀다. 아버지가 이름 모를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황구(黃狗)의 신장 1천 개가 필요하다 하였다.
홍효자는 팔공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려 산신령에게 호랑이로 변하는 비결과 주문이 적힌 책을 얻었다. 밤이면 호랑이로 변해 개의 신장을 구해 왔는데, 밤이면 사라지는 남편을 의아하게 생각하던 부인이 남편이 책을 보고 주문을 왼 뒤에 호랑이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책이 없다면 호랑이로 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부인은 책을 불태워 버렸는데, 새벽에 돌아온 홍효자는 책이 없어져 버려 다시는 사람으로 되돌아올 수가 없었다. 호랑이가 된 홍효자는 집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돌아가곤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홍범이라고 불렀다.
그 밖에도 「퇴계설화」·「열녀설화」와 아기장수형 설화가 전하는데, 아기장수형 설화의 자취로는 불행하게 죽은 아기의 원한을 풀기 위해 세워 둔 비석이 군위읍에 남아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는 노동요가 주류를 이룬다. 농업노동요 중에서 「모내기노래」와 「논매기노래」는 비슷하게 많이 불린다. 「모내기노래」는 “서마지기 논배미에/반달겉이 미와낸다/지가무슨 반달일까/그뭄초승 반달이지.” 등과 같이 사설은 다른 지방과 비슷한 보편적인 것들이다.
「논매기노래」로는 집단유희요인 「치야칭칭 나네」가 사용되기도 한다. “앞소리사 못할망정/(후렴) 치야칭칭 나네/뒷소리나 울려주소(후렴)/달아달아 밝은달아(후렴)/이태백이 놀던달아(후렴).”에서와 같이 앞소리와 뒷소리로 나누어 부르고, 사설은 여러 노래의 것을 두루 이용하고 있다.
산악일대에서 나무할 때 부르는 남자들의 신세탄식요인 「어사용」도 있는데 「어사령」이라고도 한다. “팔자야 내팔자는∼ 칠자만도 못하구나∼/꾸꾸꾸꾸 까마귀∼ 두발가진 까마귀야∼……”와 같이 신세타령을 시작하면서 느린 가락으로 슬프게 부르고, ‘∼’부분은 길게 빼면서 더욱 구성지게 부른다.
여성노동요도 많이 전해지는데, 「밭매는 노래」는 “불같이도 덥은 날에/뫼겉이도 지슨밭을/한골매고 돌아봐도/두골매고 도라보이.”라고 작업과정의 괴로움을 말하고, 이어서 신세한탄이나 시집살이의 고됨을 노래한다.
길쌈노동요 중 “연당군아 불밝혀라/칠월질삼 늦어간다/청도밀양 진삼가래/와룡산 높은진게/이리저리 걸어놓고/자고싶은 잠못자고/비비치고 나리치고/고이곱기 하여가주/시아바님 도초하고/우리낭군 일습하자/얼씨구좋다 정말로좋아/다리가아파져도 나는좋아.”라고 한 「삼삼기노래」는 청도·밀양까지 나갈 수 있을 만큼 긴 삼가락을 무릎에다 비벼 삼을 삼는 과정과 옷을 해주겠다는 기쁨에 다리 아픈 줄도 모른다는 여인네들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베 짤 때 부르는 노래에는 「베틀노래」 등이 있는데, 사설은 보편적인 베틀놓기·베짜기·남편부음듣기 등으로 구성된다. 「언문뒤풀이」가 많이 전해지는데, “가련할사 임의정은/그연금일 돈절하다/고은임은 그려두고/구정인들 잊을소냐/너죽어도 나몬살고/나죽어도 니몬산다/노노하고 절통한말/누굴대여 다할쏜고……”와 같이 어희적이기보다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길게 계속되어 길쌈노동에 불린다.
이 밖에도 동요·유희요 등이 전해지고, 「화전가」·「수심가」·「쌍금쌍금 쌍가락지」·「화투노래」 등 여성들의 노래가 많이 전해지는데, 사설의 내용이 풍부하고 길이가 긴 것이 특징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총경지면적은 8,070㏊로 전체면적의 13.1%를 차지한다. 논이 4,476㏊로 55.5%를 차지하고 밭이 3,594㏊로 44.5%를 차지해 논농사가 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위천유역에 위치한 군위읍·소보면·효령면·우보면·의흥면 등지의 평야지대에서는 쌀·보리의 주곡을 주로 생산하며, 이들 지역에 관개용수인 백학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그리고 이 유역에서는 옥수수·메밀 등의 잡곡과 팥·콩·감자·고구마를 생산한다.
채소류로는 수박·오이·가지, 엽채류로는 배추·부추·상추·미나리, 근채류로는 무·우엉, 조미채류로는 양파·마늘·고추, 특용작물로는 참깨·땅콩, 과실류로는 사과·포도·복숭아가 주로 생산된다. 빛깔 곱고 당도 높은 군위사과는 맛이 좋기로 이름 나 있으며 능금주스로도 제조되어 판매된다. 대구약령시의 영향으로 모란·작약·지황·시호·질경 등의 약초재배가 활발하다.
주요 농산물은 마늘·양파·사과이다. 특산품으로는 사과 이외에도 고로면 화산 정상의 비탈길에서 재배되는 고랭지채소와 소보면 달산리 청화산(靑華山) 남쪽 기슭의 쇠점삼밭[鐵店蔘田]에서 재배되는 인삼·식용마, 군위장터의 대장간에서 만드는, 날이 얇아 사용할 때 힘이 별로 들지 않는 호미·괭이·낫·쇠스랑·칼과 꽃돗자리 등이 있으며, 특히 진박골 꽃돗자리는 수백 년 전부터 아주 유명하다. 우보면 나호리 속칭 진박골에서 주로 생산되는 의흥종왕골은 줄기가 가늘고 부드러우며 광택이 있고, 껍질을 가늘게 쪼갤 수 있어 돗자리와 꽃방석·손가방 등의 제조에 사용된다.
2008년 현재 임야면적은 전체면적의 75.6%를 차지하고 입목축적은 348만 7803㎥이며, 임산물 생산량은 종실이 32만 8417㎏, 버섯이 13만 6400㎏으로 주로 고로면·효령면·부계면·산성면에서 많이 생산된다. 농공단지는 군위농공단지와 효령농공단지가 있으며, 두 단지의 면적은 40만 4078㎡이고 모두 56개 업체에 890명이 일하고 있다.
상업활동은 모두 5일 정기장이다. 1930년대 군내에는 4일과 9일에 원계(圓溪)·화곡(花谷)·효령·어염(於鹽)에서, 5일과 10일에 군위읍·의흥에서, 10일장이 신원(薪院)에서 열렸으며, 주로 농산물·가축·해산물 등이 거래되었다. 1895년경까지 군내의 시장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으며, 1920년 후반에 산성장(山城場)과 학성장(鶴城場)이 개설되었다.
광복 후 정기시장이 크게 증가해 1957년에 11개, 1959년에 13개로 늘어났으나, 1960년 이후 교통·통신의 발달과 경제발전에 힘입어 상설점포는 증가한 반면 정기시장의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군내의 정기시장은 1981년석산장(石山場)이 폐지되고, 1985년에는 군위·소보·효령·구효령·신원·대율·우보·의흥·화본·학성 등에 5일장이 남아 있었다. 2009년 현재는 소보장이 2·7일, 군위장이 3·8일, 우보장이 4·9일, 의흥장이 5·10일에 열리고 있다.
장터에서는 사과·고추·마늘·무·배추·돗자리를 비롯해, 복숭아·감·땅콩·참깨·돼지·소·염소 등이 거래된다. 군위장에서는 사과·황도·반시·땅콩·소·염소·개·돼지 등이 집산되며, 특히 이 지역에서 생산, 거래되는 사과는 맛이 좋기로 이름 나 있다. 1994년 현재 군위·소보·효령·부계·우보·의흥에 7개의 정기시장이 서고 있다.
교통은 중앙선 철도가 군의 동부를 남북으로 지나고, 국도인 28호선이 철도와 거의 같이 지나, 또 5호선이 서부를 남북으로 지나 대구와 연결되고, 그 외에도 지방도가 대구와 구미로 연결된다. 또 중앙고속도로, 상주영천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이름 난 관광지는 적으나 팔공산·화산을 비롯한 수려한 산악관광자원과 많은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주요 관광지로는 부계면 남산리의 삼존석굴·삼존석굴모전석탑과 남산계곡, 대율리의 자연경관이 뛰어난 한밤성안과 막암, 고로면 화북리의 학소대·인각사와 화산산성, 군위읍 상곡리의 선방산 지보사, 소보면 달산리의 청화산 법주사 등이 있다.
팔공산맥이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남산리에 높다랗게 치솟은 바위벽 속에 들어선 삼존석불은 493년(신라 소지왕 15년)극달화상이 창건했는데, 석굴 입구는 가로 4.25m, 세로 4.3m로 둥글게 뚫려 있으며, 내부 바닥은 사각형을 이룬다.
석굴 안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이 중심에 앉아 있고, 그 좌우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서 있다. 삼존석굴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석굴 앞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군위삼존석불모전석탑이 있다.
남산계곡은 팔공산의 명소로 손꼽히는 계곡으로 주변 송림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어, 여름철이면 피서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유명한 곳이다. 학소대(鶴巢臺)는 위천 상류에 위치한 백학의 서식처로, 옛날에는 많은 백학들이 둥우리를 치고 서식했다고 해 학소대라 부른다.
위천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642년(선덕여왕 11)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우리 나라 최고의 역사서 『삼국유사』를 낳은 유서 깊은 사찰 인각사가 있는데, 주위에 수십 층의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 아래에는 맑고 깊은 소(沼)가 있고, 그 위를 날아다니는 백학의 모습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운치를 자아낸다. 지금도 운치 있는 절경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로면에서 덩치가 가장 큰 화산 산정부의 평지에는 1709년(숙종 35년) 병마절도사 윤숙이 전쟁에 대비해 쌓은 석성인 화산산성, 그리고 옥정영원(玉正靈源)이라 부르는 석간수가 있다. 선방산(船放山) 중턱에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지보사가 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지보사삼층석탑이 있다.
청화산에서 원뿔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초봉의 남쪽 기슭에는 법주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보광명전 앞마당에는 5층석탑과 왕맷돌이 있다. 한밤성안은 부계면 대율리 입구 일대의 소나무숲으로, 대율초등학교 정문까지 도로 양쪽의 평지 약 5,000여 평에 2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노송 수백 그루가 장관을 이룬다.
계절에 따른 송림의 절경이 아름다우며, 팔공산을 비롯한 주위의 높고 푸른 산, 계곡의 맑은 물, 소나무 사이에 흩어진 작은 암석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그 외에 유성룡·홍천뢰·장현광 등이 휴양했다는 병암(屛巖)·용아곡(龍牙谷)·도연폭포(陶淵瀑布)·아미산, 매봉산의 신흥사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군위읍(軍威邑)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84.08㎢, 인구 8,42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동부리이다. 본래 군위군의 읍내가 되므로 현내면(縣內面)이라 해 오항(烏項)·아천(鴉川)·성지(城旨)·노상(路上) 등 10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서성면·소보면, 의성군의 억곡면 등의 일부를 병합하고 군위면이라 하였다. 1973년의성군 금성면 광현동을 편입하고, 197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의 동쪽에 선방산(船放山, 437m)·마정산(馬頂山, 402m), 서쪽에 물부리산(무담산, 454m) 등이 읍을 둘러싸고 남북으로 긴 분지를 형성한다. 그 중앙을 위천(渭川)이 흐르며 의성군 금성면에서 발원한 동천이 위천과 합류하고, 위천을 따라 좁고 긴 곡저에 경지와 중심시가지가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2.96㎢로 15.4%, 임야면적 56.85㎢로 67.7%, 기타 16.9%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8.33㎢로 64.3%를 차지하고 밭이 4.63㎢로 35.7%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인 쌀·보리 외에 사과 및 채소류의 재배도 활발하다. 또한 대추·도토리·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고, 한우와 젖소·개·돼지·토끼·닭 등의 가축사육이 활발하다.
도로는 대구∼안동간의 국도가 읍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해 대구와는 통근권 내에 있고, 금성∼소보간의 군도가 읍의 동서를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외량리의 송호서원, 상곡리의 지보사, 하곡리의 석조여래입상, 동부리의 군위향교, 대북리의 남계서원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2. 고로면(古老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14.61㎢, 인구 1,31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학성리이다. 본래 의흥군에 속한 지역으로 소수면(小首面)이라 해 여덕(汝德)·하회(河回)·인각(麟角)·덕천(德泉)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야면(巢野面)과 파립면(巴立面)의 일부를 병합해 고려시대의 고로곡부곡(古老谷部曲)의 이름을 따서 고로면이라 개칭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었다.
대부분의 면계에 화산(華山, 828m)·선암산·조림산·매봉(800m)·뱀산(834m)·방가산(758m) 등 600∼800m의 급사면에 둘러싸인 고위평탄면이 동서로 길게 펼쳐져 있다. 현재 개척촌이 형성되어 밭농사를 주로 한다. 수지상(樹枝狀)의 하계(河系)를 가지는 위천 상류가 산지를 개석해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 9.57㎢로 8.4%, 임야면적 98.50㎢로 86.0%, 기타 5.6%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28㎢로 34.3%를 차지하고 밭이 6.29㎢로 65.7%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과실류와 채소류의 생산이 많으며, 특히 파·가지의 생산이 많다. 또한 호두·대추·도토리·표고버섯·산수유·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한우·개·토끼 등의 가축사육과 양봉이 활발하다. 괴산리에서는 이 밖에도 약초·잎담배를 재배한다.
도로는 왜관∼죽전간의 지방도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하고, 고로∼춘산간의 군도가 면의 북부지역을 통과해 의성군과 연결되며,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면의 서쪽을 통과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화북리의 인각사 경내에 왕희지(王羲之)의 친필인 보각국사비가 있고, 낙전리에 압곡사와 압곡사선사영정이 있다. 또 화산에는 약수탕, 인각에는 물탕이 있으며 장곡리에는 장곡휴양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3. 부계면(缶溪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4.81㎢, 인구 2,0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평리이다. 본래 의흥군 부계현에 속한 지역으로 현내면이라 해 구방(九方)·신원(薪院) 등 8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남면·부서면, 칠곡군의 동북면, 군위군 효령면의 일부 동을 병합해 옛 현의 이름을 따서 부계면이라 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었다.
남동단에 팔공산(八公山, 1,193m)이 위치하며, 그 주령이 면의 남부경계를 이룬다. 남천과 그 지류인 사창천 유역에는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6.29㎢로 9.7%, 임야면적 51.72㎢로 79.8%, 기타 10.5%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06㎢로 48.7%를 차지하고 밭이 3.74㎢로 51.3%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산물인 쌀·보리 외에 구릉성 산지의 산록에서 무·배추·양배추 등의 채소류가 생산되며, 감·사과·배·복숭아 등의 과실류도 재배된다. 밤·표고·산수유 등의 임산물 생산과 양봉·산양사육이 활발하다. 남산리에서는 약초와 버섯이 많이 나며, 딸기가 많이 생산된다.
도로는 언양∼우보간의 지방도가 면의 북부를 통과하며, 왜관∼죽전간의 지방도가 창평리에서 갈라져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해 대구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남산리에 남산서원을 비롯해 삼존석굴이 있는데 석굴은 경주의 석굴암보다 50년 앞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군위삼존석불모전석탑이 있다. 창평리에 문양서원, 도산리의 산내마을팔공산에 오도암(梧道庵)이 있으며, 남산리에 휘찬여사목판, 대율리에 대청 등이 있다. 이 밖에 문암서당(文巖書堂)·부계서당(缶溪書堂)·출남정(出南亭)·보원당(報遠堂)이 있다. 매곡리의 수동마을에는 피부병에 좋다는 약물탕이 있으며, 대율리에는 부림홍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4. 산성면(山城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77㎢, 인구 1,2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본리이다. 본래 의흥군에 속한 부계현의 동쪽이 되므로 부동면(缶東面)이라 해 여좌(余佐)·아치(牙致)·신령(薪嶺)·범중(凡中) 등 11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남면·중리면·소수면의 일부 이를 병합해 팔공산성(八公山城)의 이름을 따서 산성면으로 개칭하였다. 동쪽의 조림산과 남단의 시루봉(714m)이 최고봉으로 이들 산지에서 뻗어 나온 구릉성 산지가 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위천의 지류인 구천(九川)이 산지를 침식해 하천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총경지면적 6.80㎢로 18.5%, 임야면적 26.52㎢로 72.1%, 기타 9.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3.06㎢로 45.0%를 차지하고 밭이 3.74㎢로 55.0%를 차지해 밭농사가 조금 더 많은 비중을 이룬다. 무·파·호박 등이 많이 생산되며, 유지작물과 참외·수박·고추 등의 특용작물도 재배된다. 호두·대추·산나물·도토리 등의 임산물과 산양사육도 활발하다.
교통은 예로부터 의성·안동지방으로 통하는 길목이었으며, 현재는 중앙선과 산성∼우보, 산성∼점곡간의 군도가 남북으로 통과해 영천·의성·안동 방면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운산리의 산성마을에 팔공산성의 북문터가 남아 있다. 백학리 입구에는 김녕김씨의 효자각이 있고, 부처가 목욕을 했다는 불목골, 봉림역 남쪽에 만모정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5. 소보면(召保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01.30㎢, 인구 2,3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원리이다. 본래 군위군에 속했던 소소보부곡(召召保部曲)으로 조선시대에 소본면(召本面)이라 해 대흥(大興)·농암(籠巖)·상소(上召) 등 10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본면 또는 석을본면(石乙本面)·화곡면(花谷面), 구미시의 산동면(山東面) 일부를 병합해 소보면이 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면의 중앙부를 곡정천(谷亭川)이 곡류하며 충적평야를 형성하였다. 하천을 따라 농경지 및 취락이 분포해 있다.
총경지면적 13.67㎢로 13.5%, 임야면적 75.70㎢로 74.7%, 기타 11.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9.22㎢로 67.4%를 차지하고 밭이 4.45㎢로 32.6%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경지면적이 군내에서 가장 넓으며, 채소류의 재배도 활발해 호박·고추·가지·당근의 생산이 많다. 위성리에는 1992년에 세운 국내 유일의 사과연구소가 있어 우리 기후와 토양에 맞는 사과재배법과 병충해예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도로는 모동∼현서간의 지방도와 구미∼비안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교차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내의리에 양암정, 위성리에 동암정(東巖亭)·삼수정(三水亭), 보현리에 백련암·백운암과 효자각, 달산리에 법주사 등이 있으며 위성리에는 삼대석(三臺石)·삼대목(三臺木)·삼대불(三臺佛)이 있다. 또한 피부병에 좋다는 까치리약수터와 희일 북동쪽에 장수샘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6. 우보면(友保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98㎢, 인구 2,0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화리이다. 본래는 의흥군에 속한 지역으로 우보면이라 해 봉강(鳳岡)·고산(高山)·무둔(武屯)·원당(院堂) 등 10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화면(乃化面)·우산면(牛山面), 의성군 산운면(山雲面), 군위군 중리면(中里面)의 일부 동을 병합해 우보면이라 하고 군위군에 편입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면의 북쪽에 왕제산(旺齊山, 320m)·국통산(國通山, 337m) 등이 있다. 면의 중앙부를 관류하는 위천을 따라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주요 농업생산지를 이룬다.
총경지면적 9.61㎢로 16.0%, 임야면적 43.55㎢로 72.6%, 기타 11.4%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4.95㎢로 51.5%를 차지하고 밭이 4.66㎢로 48.5%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인 쌀·보리 외에 토마토·마늘·고추가 생산된다. 그 밖에도 양배추와 섬유작물의 생산이 많으며, 군내 유일의 왕골생산지로 유명하다. 특히 나호리의 진박골에서 생산되는 왕골은 군위 특산품인 돗자리에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젖소·닭·한우의 사육도 활발하다. 도로는 중앙선과 산성∼우보간의 군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언양∼우보간의 지방도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통과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달산리에 봉강서원·신흥사·윤효자비(尹孝子碑) 등이 있다. 봉산리 북당골에는 옻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옻물샘이 있으며, 나호리에 월성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7. 의흥면(義興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17㎢, 인구 2,6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의흥 군청이 있던 곳이므로 중리면(中里面)이라 해 읍상(邑上)·읍하(邑下)·노하(路下) 등 6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리면·파립면과 소수면의 일부를 병합해 의흥면이 되었다.
파전리에 진산인 용두산(142m)이 있으며, 지형은 동부가 높고 서부가 낮은 동고서저의 말굽형 형상이다. 최고봉은 북동단의 선암산(船巖山, 879m)이며, 면의 중앙을 흐르는 위천을 따라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총경지면적 10.46㎢로 19.3%, 임야면적 36.29㎢로 67.0%, 기타 13.7%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5.75㎢로 55.0%를 차지하고 밭이 4.71㎢로 45.0%를 차지해 논농사가 좀 더 놓은 비중을 이룬다. 경지율이 군내에서 가장 높으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양파가 많이 생산되고, 무·배추·호박 등도 소량으로 생산된다. 한우와 돼지의 사육도 많이 한다. 도로는 영주∼포항간 국도가 면의 중앙부를 통과해 영천·의성·안동 방면과 연결되고, 산성∼점곡간 군도가 남북의 인접면과 연결되어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신덕리의 극락암, 읍내리의 광풍루(光風樓)·대월루(對月樓)·의흥향교가 있으며, 수서리 솔뫼 남쪽의 선창, 수북리의 수각정(水閣亭), 매성리의 자연정, 파전리의 어서각 등이 있다. 수북리에는 구산박씨(龜山朴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8. 효령면(孝令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98.46㎢, 인구 3,9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중구리이다. 본래 군위군에 속한 효령현의 땅이므로 효령면이라 해 내동(乃東)·내서(乃西)·장기(場基) 등 17개 이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중리면(中里面), 의흥군 부서면(缶西面)·우보면의 일부 동을 병합해 옛 이름을 따서 효령면이 되었다.
위천의 북쪽에 국통산(國通山, 337m)과 마정산(馬頂山, 402m)·적라산(赤羅山, 252m)·응봉산(鷹峰山, 279m) 등을 연결하는 산릉이 면계를 둘러싸고 있으며, 면의 대부분은 매봉산(梅峰山, 489m)을 최고봉으로 하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중앙을 남동에서 북서로 남천이 흘러 유역에 띠모양의 평야가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1.99㎢로 12.2%, 임야면적 75.67㎢로 76.8%, 기타 11.0%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논이 6.72㎢로 56.1%를 차지하고 밭이 5.27㎢로 43.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외에 무·배추·호박·파 등의 채소류와 유지작물이 있다. 밤·대추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된다. 한우·젖소·돼지·개·닭 등의 사육과 양봉도 활발하다.
도로는 마산∼중간진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해 군위·대구와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언양∼우보간 지방도가 영천·의성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불로리에 마애보살입상, 거매리에 피부병에 좋다는 박태약수터, 장군리에 장군당·제동서원, 오천리에 삼빙정(三氷亭)이 있다. 중구리에는 연안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군위읍
주02
효령면
주03
부계면
주04
구미시
주05
부계면
주06
선산군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이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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