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Georgia)

조지아의 국기
조지아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시아 흑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그루지아, Gruziya
정의
아시아 흑해 연안에 있는 공화국.
개설

러시아 남부 흑해 연안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는 310㎞이다. 독립국가연합(CIS)을 구성한 공화국의 하나이나 2009년 6월 의회에서 탈퇴를 의결하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면적은 6만 9700㎢, 인구는 493만 1226명(2015년 현재), 수도는 트빌리시(Tbilisi). 주민은 조지아인 83.8%, 아제르바이자인 6.5%, 아르메니아인 5.7%, 러시아인 1.5%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조지아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조지아 정교 83.9%, 이슬람교 9.9%, 아르메니아사도교 3.9% 등이다.

국토의 3분의 2가 산악지대이며, 평야지대에는 목축과 포도재배가 매우 성하다. 강우량은 많은 편이며 기온 차가 심하다. 석탄과 철광석, 원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중공업이 발달되어 있고 발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 편이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량은 14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720달러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로서,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150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민족연합운동당, 통합국민의회, 기독민주당, 공화당, 노동당 등이 있다.

약사

서기전 3세기 카틀리 왕국으로 출발한 이 나라는 1936년 소연방 구성공화국으로 발족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하여 왔다. 조지아인들은 타마라여왕시대(1184∼1213)에 최전성기를 이룩하였으며, 이때 카프카즈지방에서 최강의 국력을 누렸다. 철학과 과학이 발달하였으며, 건축과 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것도 이 시대였다.

1386∼1403년 몽고의 티무르에 의하여 8차례나 침공을 당하여 국력이 크게 쇠잔되었으나,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한 콘스탄티노플 장악으로 조지아는 서유럽과 직접 관계를 수립, 15세기 말까지 통일국가를 유지시켜 왔다. 16세기 초 조지아인들은 터키와 사파비 이란과의 전투에 휘말렸고, 오랜 전쟁 끝인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되찾았다.

그러나 1783년 러시아와 보호조약을 체결하였고, 1795년 이란군의 침입을 받게 된 이후 러시아제국에 병합되었다. 1918년 5월 공화국이 수립되고 유럽 국가들과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22개국의 승인을 얻었으나, 1922년 12월 소연방에 편입되었고, 1936년 12월 소연방구성공화국으로 되었다.

1989년 11월 조지아최고회의는 소연방 탈퇴를 결정하였고, 1990년 11월 14일 주권을 선언, 1991년 4월 9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독립 당시에는 독립국가 연합에 참여를 원하였으나 인권탄압을 이유로 거부당해 오다가 1993년 12월 9일 독립국가연합의 12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였으나 2009년 6월 의회에서 탈퇴를 의결하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1995년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남부 오세티아의 소수민족이 독립을 선언하여 민족분규에 시달리고 있다. 대외정책은 우경중립의 외교를 펴고 있으며, 1992년 유엔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는 1992년 12월 14일 수교하였고, 2007년 현재 주 우크라이나 대사가 그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조지아 수출액은 7340만 달러로 화학제품과 자동차가 주종목이며, 수입액은 1430만 달러로 주종목은 섬유와 알루미늄이다. 현재 20명의 한국민이 체류하고 있다.

한편, 북한은 1994년 11월 3일 수교하였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주요수출입통계』(관세청, 2007)
Dictionnaire des Nationalit et des Minorit en U.R.S.S.(Caratini,R., ed., Larousse, 1990)
The Nationalities Question in the Soviet Union(Smith,G., ed., Longman, 1990)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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