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되는 것에는 행동과 말 양쪽이 포함된다. 터부(taboo,tabu)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는 금기는 ‘구기(拘忌)’라고도 하며, 우리나라의 민속 현장에서는 ‘가리는 일’, ‘금하는 일’ 등으로 불려지고 있으며, 더러는 ‘지키는 일’, ‘삼가는 일’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 네가지의 말을 종합해보면, 우리 민속에서 금기는 두가지 원리를 지니고 있는데, 하나는 ‘선택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금지의 원리’이다.
‘지킴’·‘삼감’·‘금함’ 등이 후자에 딸려 있고, ‘가림’은 전자에 속해 있다. 그러나 금기가 지켜지고 있는 현장에서 보면, 금지의 원리 쪽이 더 큰 비중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선택은 종교적으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르는 데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후자이기 때문이다. 선택을 해서는 안 될 일을 선택하는 쪽에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기는 종교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려서 그것을 하지 않도록 하거나, 하지 않게 지키는 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여서는 안 되고, 무엇인가에 근접하거나 손을 대어서는 안 되고, 무엇인가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되고, 또 어느 대상을 보거나 들어서도 안 되는 것이 금기이다. 그렇다고 금기가 언제나 기피나 회피 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령, 부정한 짓을 해서는 안 될 경우 부정에 빠지지 않게 목욕재계하는 것은 좋은 보기가 될 것이다.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는 금령이 있을 경우, 하지 않음으로써 보장될 어느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행동하는 일이 우리의 민속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지킴’이나 ‘가림’에는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속신앙에서 문제되는 ‘깨끗함’과 ‘더러움’, ‘청정(淸淨)’과 ‘부정’의 이원론적 대립을 두고볼 때, 금기는 더러움이나 오염 또는 부정에 걸리지 않고, 청정·맑음·깨끗함을 보장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종교적 오염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금기이다. 부정을 타는 것은 오염이다.
그러나 금기에서 오염감·더러움을 느끼는 마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나 무서움, 그리고 위험감도 금기를 촉발하는 중요한 심리적 동기가 되는 것이다. 더러운 느낌을 줄 수 있는 금기의 대상 가운데서 우리들이 오관을 통해 직접 불결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똥·오줌·침·가래, 그밖에 여성의 경도(월경)들은 대표적인 것이거니와, 이 더러운 것들의 배설기관과 그것으로 이루어지는 행동 또한 금기의 대상이 된다. 성행위가 그 본보기의 하나이다. 심지어 여성의 생산행위도 같은 보기에 들 수 있다.
이 행위가 한편으로는 생명력·창조력의 원천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을 생각할 때, 여성의 생산행위는 민간신앙에서 상반되는 양면성, 곧 등가성(等價性)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령, 별신굿에서 여성의 생산행위가 금기로 간주되는 경우, 그것은 그 행위가 성행위의 결과라는 것 이외에 여성 자체가 부정으로 다루어져 있다는 것과 관련지어진다.
민속신앙에서 여성 자체가 이미 등가적이다. 한편, 죽음(또는 주검)은 무서움과 더러운 느낌이 어우러진 결과 금기의 대상이 된다.
주검의 표정이 일깨우는 공포감과 그것이 썩어갈 때 드러나는 더러움은 살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쉽게 금기의 대상이 되게 한 것이다. 실제로 별신굿 현장에서 여성과 죽음은 금기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된다.
별신굿을 앞두고 초상이나 출산이 있게 되면, 날짜를 따로 잡아 굿을 올리거나 아주 올리지 않게 된다. 별신굿 또는 동신제를 지내기 전 당집에 금줄을 치고 그 입구에 황토를 뿌리는 일이나, 무당굿의 이른바 ‘부정거리’는 부정을 쫓는 것을 기능으로 삼고 있다. 이 거리에는 더러운 느낌을 일깨울 대상도 물론 포함된다.
그러나 동시에 여귀(厲鬼 : 싸움터에서 죽은 병사들의 넋)를 비롯한 여러 원귀 또한 이 부정거리에 포함된다. 이렇듯, 금기의 대상인 부정에는 더러운 느낌을 주는 것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더불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겉보기나 크기 등의 비정상적인 것도 또한 금기의 대상이 된다. 이 경우는 두려움이나 위험감이 더 많이 작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관점에서 낯선 물건이나 사람 또는 낯선 지방이 금기의 대상이 되는 배후의 심리도 설명할 수가 있을 것이다. 별신굿이 치러지는 동안, 다른 곳 사람을 마을 안으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그 본보기의 하나이다.
굳이 종교적인 맥락이 없기는 하나 왼손잡이·소경 등이 불운을 초래한다는 이유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기피되는 것도 같은 각도에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이른바 속신(俗信)에 관련된 금기라서 종교적인 맥락을 짓는 금기와는 구별해야 한다.
‘……하면(보면, 들으면) 재수없다.’고 믿어지고 있는 속신에서 비정상적인 것, 이질적인 것, 낯선 것 등은 상당히 큰 몫을 하고 있다. 고양이·뱀과 밤에 나타나는 거미 및 까마귀·새똥 등은 단순한 혐오감 때문에 속신과 맺어진 금기의 대상이 된다. 한편, 외경감 또는 숭앙심이 작동하면서 어느 대상을 금기로 삼을 때가 있다.
높은 산, 오래된 나무, 거대한 바위 등이 그러하거니와 신격화되어 숭배받는 인물이 얘기될 수도 있다. 이 경우는 부정을 기피하기 위한 부정의 원리는 작용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거룩한 것을 거룩한 채로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한 금기가 여기서는 문제된다. 세속적인 것으로 신성한 것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간과 시간 또한 금기의 대상이 된다. ‘방위를 가린다.’ 또는 ‘시(때)를 가린다.’고 할 때의 방위와 시가 바로 그것이다. 방위의 금기로는 이른바 ‘손 든 방위’와 ‘장군 든 방위’가 있다. 언제나 굳어져서 정해진 방위가 아니고, 주로 시간적인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특정한 방위가 금기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공간과 시간의 금기는 서로 상승작용을 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며칠이니까 어느 방향에 손이 있으므로 그 방위로는 벽에 못을 치지 말아야 한다.’는 문맥 속에 그 같은 상승작용이 잘 나타나 있다. 전통사회의 한국인들은 바깥나들이를 할 때 ‘방위 가림’은 비교적 엄하게 지켜졌다. 시간과 방위가 상승작용을 하면서 한국인의 행위를 제약하였을 때, 거기에는 ‘우주적 시간론’과 ‘인간적 시간론’ 사이의 대응이 문제되고 있었던 것이다.
전자에는 자연의 운행, 자연의 기 또는 기운이란 개념이 포괄된다고 보면, 인간의 운세는 당연히 그에 조화하여야 한다고 본 것이다. ‘성(聖)’과 ‘속(俗)’, 즉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라는 이원론적 대립에서 속이 곧 부정으로 간주되고, 그래서 금기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별신굿이나 당산굿을 주관하는 제주나 화주(化主)가 제수(祭需 : 제사에 쓰는 여러가지 물건이나 음식)를 장만하기 위해 장에 가서 남과 얘기를 해서는 안 되고, 흥정을 해서도 안 된다고 하여 그것이 지켜지고 있을 때, 흥정이라는 상행위가 대표하는 ‘속’의 원리가 곧 부정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별신굿과 같은 집단적 공동제의에서 금기는 굿 자체의 성패를 가늠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금기가 지켜지지 않았을 때, 굿은 파탄을 일으킬 것이고 신령은 인간의 말을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마을의 안녕과 번영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별신굿을 앞두거나 그것이 치러지는 동안 금기는 사람들에게 무겁고 갑갑한 경험, 그러면서도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경험을 안겨주게 된다.
사람들은 극도로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한 몸가짐을 가지게 된다. 한 사람의 금기 파괴, 곧 부정이 마을굿을 송두리째 못 쓰게 만든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가 이른바 ‘탈’이고, ‘빌미’이다. 마을에 금기가 지켜지는 과정은 입사식에 임한 후보자들이 가지는 간난과 시련 속의 고독하고 닫혀진 행위에 대응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금기는 굿의 ‘안전과 보장의 원리’가 된다. 이것은 종교적 제의 전반에 확대해도 좋을 명제이다. 굿을 무사히 치르기 위한 안전장치요, 굿의 결과인 효험을 미리 다짐하는 보장의 제도가 곧 금기이다. 여기서 금기는 소극적인 굿, 소극적 제의, 또는 주술이란 일면을 드러내게도 되는 것이다. →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