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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金松)

현대문학인물

 일제강점기 「국경의 주막」, 「추계」, 「봉황금」 등을 저술한 작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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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국경의 주막」, 「추계」, 「봉황금」 등을 저술한 작가.소설가.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함경남도 함주 출생. 호는 범산(凡山). 함남고등보통학교(咸南高等普通學校)를 거쳐, 니혼대학[日本大學] 예술과를 중퇴하였다. 귀국하여 희곡을 쓰면서 학생좌(學生座), 소형극장(小形劇場) 등을 조직하여 연극운동에 참여하였다.
1930년에 신흥극장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작품 「지옥」을 조선극장에서 상연했는데 일본유학 체험을 살려 일제의 유치장과 형무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 일경의 탄압으로 공연이 중단되었다. 그 뒤 한동안 유랑생활 끝에 희곡 창작에 전념하여 「국경의 주막」·「추계」 등을 발표하면서 2권의 희곡집을 출간하였다.
그 뒤 「봉황금(鳳凰琴)」(1939)·「가돈상경(家豚上京)」(1940) 등을 계속 내놓고 1943년부터 소설 창작으로 장르를 바꾸어 「애정(愛情)」을 발표하였다. 광복 후에는 좌익 세력과 대항하여 민족문학을 옹호 발전시키기 위하여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약어로 된 순수 문예지 『백민(白民)』을 창간하였다.
이어 서울신문 문화부장을 거쳐 순수 문예지 『자유문학(自由文學)』의 주간을 맡았다. 이 무렵 단편 「만세(萬歲)」(1945)·「무기(武器) 없는 민족(民族)」(1946)·「고향(故鄕) 이야기」(1946)·「정임(貞任)이」(1948)·「남사당(男寺堂)」(1948)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특히, 「남사당」에서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남사당의 근친상간(近親相姦)에서 빚어지는 비극적 숙명과 토속적 애수를 그려 주목을 받았다.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지방색이 짙은 감상적 경향과 소시민의 생활 현실을 그렸으나, 후기에 접어들어 현실의식을 지니기 시작하여 시야를 사회문제로 확대하였다. 그 대표적 작품으로 단편 「피」(1956)·「심판(審判)」·「탈주로(脫走路)」(1956)·「농민사(農民史)」(1966)·「양반전(兩班傳)」(1968) 등이 있다. 1973년 전국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저서
작품집으로는 『무기(武器) 없는 민족(民族)』(1946)·『순정기(純情記)』(1947)·『남사당(男寺堂)』(1949)·『탁류(濁流) 속에서』(1950)·『영원(永遠)히 사는 것』(1952)·『탁류(濁流)』(1953)·『청개구리』(1959)·『애정도시(愛情都市)』(1961)·『이성계(李成桂)』(1961)·『낙랑공주(樂浪公主)와 호동왕자(好童王子)』(1962)·『세월(歲月)』(1969) 등이 있다. 희곡집으로는 『호반(湖畔)의 비가(悲歌)』(1939)·『산(山)의 승패(勝敗)』(1940)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탈피와 인욕: 김송 저 ‘남사당’을 읽고」(구상,『경향신문』,1944.3.22)

  • 「김송희곡집 ‘호반의 비가’ 평」(한설야,『조선일보』,1938.2.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개정 (1997년)
윤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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