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604년(선조 37) 가의대부(嘉義大夫, 종2품) 내시부상호(內侍府尙弧)인 김양보를 충근정량호성공신(忠勤貞亮扈聖功臣) 자헌대부(資憲大夫, 정2품)인 삼등공신으로 한 계급 특진시키고 포상하는 교서(敎書)이다.
이 교서는 발급자(發給者)는 선조이고, 수령자(受領者)가 개인으로 모관모직(某官某職)이 명시되어 있으며, 시면(始面) · 기두(起頭) · 결사(結辭) · 발급일이 적혀있다. 연호 다음에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 담황색 비단에 묵서한 교서로, 상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오손, 멸자(滅字), 부식된 부분도 있으며, 제9항 13자 아래의 다섯 자는 알아보기 어렵다.
1604년(선조 37) 6월 25일에 선조는 국난을 극복하는 데 공을 세운 신하들에 대해 책훈 대상자와 훈호를 이미 결정하였지만, 4개월이 흐른 10월 29일에 공신들에 대한 교서를 반급하였다. 이때 책훈된 세 가지 공신인 호성공신(扈聖功臣), 선무공신(宣武功臣), 청난공신(淸難功臣) 중 호성공신은 서울에서 의주까지 줄곧 선조를 수종한 신하에게 내린 칭호이다.
당시의 일등공신은 이항복(李恒福)과 정곤수(鄭崑壽) 2인, 이등공신은 이우(李珝) 등 31인, 삼등공신은 정탁(鄭琢) 등 53인이었으며, 김양보는 삼등공신 53인 중 23번째 수록되어 있다. 본래 종2품인 가의대부로 있다가 임진왜란 시에 어가(御駕)로 선조를 피신시켰다하여 김양보를 정2품인 자헌대부로 특진시킨 것 외에, 노비 7명, 전(田) 60결, 은전(銀錢) 5량, 옷감 한 벌, 말 1필을 하사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서울의 강태영(姜泰泳)이 소장하고 있고, 19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교서는 내시에게 주어졌으며, 그 품계도 자못 높을 뿐만 아니라 공신도감에서 왕명에 따라 주는 녹권(錄券)이 아니고 선조가 직접 내린 교서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했던 공신들에 대한 포상 및 임진왜란 이후의 공신들의 변화상 등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