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학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철원애국단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7년(고종 14)
사망 연도
1933년
출생지
황해도 금천
관련 사건
3·1운동
정의
일제강점기 때, 철원애국단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목사 ·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황해도 금천 출신. 1917년 서울 광희문교회(光熙門敎會)·수표교회(水標敎會) 목사를 역임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3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를 기각하였다.

그 해 10월 철원에서 김상덕(金相德)·신현구(申鉉九)·조종대(趙鍾大) 등과 애국단(愛國團) 철원군단(鐵原軍團)을 조직하고 이근옥(李根玉) 등 청년들을 모집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1920년 3월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해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정치범죄처벌령·보안법 및 출판법위반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복역하였다.

1922년 출옥 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집단거주지인 신한촌(新韓村) 선교사를 자원하여 그곳에서 전도사업을 펼쳤다.

1929년 소련공산당에 체포되어 10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3년에 대통령표창, 1977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9(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한국감리교소사』
『매일신보(每日申報)』(1920.12.24.)
집필자
김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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