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경수(敬受), 호는 일우(一宇). 충청남도 예산 출신. 의병장 민종식(閔宗植)의 휘하에서 소모관(召募官)으로 활약한 김재정(金在貞)의 맏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국권이 일제에 의하여 침탈당하자 구국을 맹세하고 1915년 박상진(朴尙鎭)·우재룡(禹在龍)·권영만(權寧萬)·양제안(梁濟安)·김경태(金敬泰) 등과 함께 대구에서 비밀결사인 광복회(大韓光復會)를 조직하였다.
광복회는 1916년 노백린(盧伯麟)·김좌진(金佐鎭) 등 동지를 규합하여 전국 규모의 독립운동단체로 거듭났다. 김한종은 충청지부장으로 임명되어 총사령 박상진과 더불어 각지의 부호로부터 국권회복운동의 자금을 거두었다.
1918년 1월에는 김경태·임봉주(林鳳柱)를 파견하여 친일 악질관리인 충청남도 아산의 도고면장(道高面長) 박용하(朴容夏)를 사살하였다. 그해 1월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은 1919년 9월 22일 기각하였다.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 1921년 8월에 총사령 박상진과 함께 처형되어 순국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