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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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꼭두각시놀음 / 조종
꼭두각시놀음 / 조종
연극
작품
문화재
우리 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무형문화재(1964년 12월 0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목차
정의
우리 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
내용

우리 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 현재까지 전래된 민속인형극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일명 <박첨지(朴僉知놀음)> · <홍동지(洪同知)놀음>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꼭두각시놀음>은 과거 봉건시대부터 개화기까지 떠돌아다니던 직업적 유랑예인집단(流浪藝人集團)인 남사당패(男寺黨牌)에 의하여 연희되었으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다. 삼국시대에 대륙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농경의식의 하나인 농악굿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인형극의 발생에 대해서는 일찍이 독일학자 피셸(Pischel)이 ≪인형극의 고향≫(1900)을 쓴 이래 인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류모채(Liu Mau-Tsai) 등 중국학자들에 의해서 중국의 장례의식(葬禮儀式)에서도 인형을 썼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인도와 중국에서 각각 발생했다는 학설도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인형극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인형극은 이미 삼국시대의 고구려악(高句麗樂)에 있었고, 그것은 중국을 거쳤거나 혹은 직접 북방을 거쳐 수입된 서역악(西域樂)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고구려 악무(樂舞) 중 서역악에서 유래된 가면무악(假面舞樂)과도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꼭두각시놀음>은 주로 경기 · 충청 · 전라 · 경상 등 중남부일대에서 남사당패에 의해 많이 공연되었는데, 현존하는 연희자들의 본적도 대부분 경기 · 충청 · 전라도이다.

그러나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물 중에 평안감사, 용강 이심이, 황해도 영노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놀이가 해서와 관서지방과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이 극본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까지는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의 하나로서 조선 후기로 추정해왔다. 그러나 이규보(李奎報)의 <관극시 觀劇詩>에 인형극의 내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에 어느 정도의 극본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가 하는 여섯 종목의 놀이(풍물 · 버나 · 살판 · 어름 · 덧뵈기 · 덜미) 중 끝놀이이며, 이들 연희자들은 인형극을 ‘덜미’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노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사당패가 직업적인 유랑예인집단이었으므로 관람료를 받았고, 포장막을 치고 공중무대를 세워서 공연하였다.

<꼭두각시놀음>의 내용은 채록본(採錄本)에 따라 다소 다른데, 이는 민속극의 구전성(口傳性)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 내용은 보통 7∼10막으로 나뉘는데, 최고(最古)의 채록본인 김재철본(金在喆本)에 의하면 8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막은 ‘곡예장’으로,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남사당패 놀이판에 끼어든 이야기를 산받이(인형과의 대화자)와 나누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제2막은 ‘뒷절’로서, 뒷절의 상좌들이 박첨지의 질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박첨지가 노해서 자기 조카 홍동지를 불러 중을 내쫓는 것으로,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제3막은 ‘최영로(崔永老)의 집’으로서, 박첨지가 사돈 최영로의 집에 가서 새를 쫓으러 가는데 사람이 나오는 족족 잡아먹는 용강 이심이에게 막 잡아먹힐 뻔했을 때 홍동지가 와서 구해준다.

제4막은 ‘동방노인’으로서, 눈을 감고 등장한 까닭은 세상이 부정(不淨)하기 때문이라고 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풍자를 볼 수 있다.

제5막은 ‘표생원(表生員)’으로서, 표생원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는데, 첩인 돌머리집을 상면시키자 싸움이 벌어지고, 박첨지는 첩에게만 살림을 후하게 나누어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중이 되러 가겠다고 퇴장하는 것으로, 일부처첩제(一夫妻妾制)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과 서민층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제6막은 ‘매사냥’으로서, 평안감사가 새로 부임해오자마자 매사냥을 하겠다며 포수와 사냥하는 매를 대령하도록 하는데, 지배계급의 횡포와 그에 대한 풍자를 보여준다.

제7막은 ‘평안감사 상여’로서, 평안감사가 모친상을 당해 상여가 나가는데 상제는 오히려 좋아하며, 향두꾼으로 벌거벗은 홍동지가 불려와서 상여를 메는 내용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보여준다.

제8막은 ‘건사(建寺)’로서, 박첨지가 나와 장례 후 명당에 절을 짓겠다고 알리면 중 2명이 나와 조립식 법당을 짓고는 다시 헐어버린다.

절을 짓는 것은 주인공의 종교에의 귀의로 해석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 다시 절을 허는 것은 토속사상과 외래종교인 불교와의 상극이라는 해석으로, 또는 종교마저 뛰어넘는 주인공의 초월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꼭두각시놀음>은 탈춤과 함께 우리 고전극의 한 종류이면서도 주인공 박첨지의 일대기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색다르다. 즉, 박첨지 일가의 파탄과 구원이라는 줄거리를 일관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꼭두각시놀음>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격조 높은 인형극이다.

<꼭두각시놀음>의 등장인물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르나, 대체로 박첨지 · 꼭두각시 · 홍동지 · 돌머리집 · 표생원 · 소무당(2명) · 상좌(2명) · 동방노인 · 평안감사 · 작은박첨지 · 홍백가 · 잡탈 · 이시미 · 매 · 꿩 등이다.

인형의 재료는 나무와 종이 등이며, 반주악기는 풍물[農樂]에 쓰이는 꽹과리 · 북 · 징 · 장구 · 날라리이고, 장단은 염불 · 타령 · 굿거리 등이며, 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인형의 양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상반신을 흔드는 춤을 춘다.

<꼭두각시놀음>의 무대라든가 연출방식, 인형조종법 등은 중국 인형극과 대체로 비슷하고, 일본 민속인형극과는 너무 비슷한데, 이는 세 나라 인형극이 동일계통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꼭두각시놀음>은 중국 인형극의 줄인형(marionette) · 장두괴뢰(杖頭傀儡) · 포대괴뢰(布袋傀儡, puppet) 방식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대는 사방에 기둥 네 개를 세우고 까만 포장을 친 것으로, 인형조종자는 포장 안에 들어앉아 인형의 하반신을 잡고 조종하며, 인형들은 상반신만 포장 위로 올라와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인다. 악사들은 포장 밖에 앉아 연주하면서 조종자의 이야기를 받는데, 그를 산발이역이라 부른다.

이 놀음은 민족항일기에 명맥이 거의 끊어질뻔하다가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꼭두각시놀음이 남사당놀이로 명칭 변경되면서 남사당놀이의 종목에 꼭두각시놀음이 포함되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민속극회남사당’이 그 전수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역대 기능보유자로는 남운룡(南雲龍:인형조종 및 제작) · 양도일(梁道一:받는 소리, 악사) · 송복산(宋福山:악사, 호적) 등이 있으며, 현재는 박계순(朴季順:산발이)과남기환(南基煥)이 지정되었다.

채록본은 김재철채록본(전광식 · 박영하 구술, 1937) · 최상수채록본 Ⅰ(崔常壽採錄本Ⅰ, 노득필 구술, 1954) · 최상수채록본 Ⅱ(남운룡 구술, 1954) · 박헌봉채록본(朴憲鳳採錄本, 남운룡 구술, 1964) · 이두현채록본(李杜鉉採錄本, 남운룡 · 송복산 구술, 1964) · 심우성채록본(沈雨晟採錄本, 남운룡 · 양도일 구술, 1970)의 여섯 가지가 있다. →인형극

참고문헌

『조선연극사』(김재철, 학예사, 1939)
『한국민속고』(송석하, 일신사, 1960)
『한국가면극』(이두현,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의 민속극』(심우성, 창작과 비평사, 1975)
『한국인형극의 연구』(최상수, 정동출판사, 1981)
『전통극과 현대극』(유민영,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4)
집필자
유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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