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는 매년 여름에 시(詩)·부(賦)로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는 도회(都會)가 있었는데 조선초에 폐지되었다.
그 뒤 1407년(태종 7)에 권근(權近)의 건의로 부활되어, 각 도 관찰사의 주관하에 매년 6월 계수관(界首官)에 도회소를 설치하고 도내(道內)의 교생(校生)을 제술(製述)과 강경(講經)으로 고열(考閱)하였다.
세종연간에는 각 도 도회소의 생도가 강경을 소홀히 하고 제술에만 힘쓰자 3월 1일에서 4월 20일, 8월 1일에서 9월 20일까지는 제술은 중지하고 경서만을 강독하게 하였다.
이의 실시로 생도들의 제술능력이 떨어지게 되자, 다시 외방도회(外方都會) 50일 내에 3일 중 2일은 강서(講書), 1일은 제술을 공부하도록 하고, 50일 내의 우등자 3인을 뽑아 4학(四學)의 인재 선발 예와 같이 생원·진사시 초시를 거치지 않고 회시(會試)에 바로 응시하게 하는 특전을 주었다.
성종대에는 보다 정비되어 시관은 해당도내 문명(文名)이 있는 수령 3인으로 구성되었고, 선발인원수도 경상도·전라도·충청도는 각 5인, 그 나머지는 3인으로 법제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