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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會館)

사회구조제도

 마을 주민들의 집회를 위하여 세워진 공공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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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회관
분야
사회구조
유형
제도
성격
사회, 복지, 공공건물
시대
현대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마을 주민들의 집회를 위하여 세워진 공공건물.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공회당·동회관(洞會館)·새마을회관이라고도 하며, 마을의 공유 재산으로서 존재한다. 마을에는 동장이나 반장을 중심으로 하는 리·동의 조직을 비롯하여 개발위원회, 4H클럽, 부녀회, 동계 등과 같은 많은 조직이 있다.
이와 같은 조직들은 일의 논의와 결정 및 집행과 결산 등을 위하여 집회를 갖는데, 마을회관은 이들의 집회를 위하여 건립된 것이다. 마을회관의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부계 혈연관계를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하는 동성마을에서는 오래 전부터 친족 집단의 공유 재산인 정자나 재실이 마을 주민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된 듯하다.
또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사는 각성마을이나 민촌(民村)에서는 개인의 사랑방이나 동구(洞口), 정자나무 밑의 넓은 곳이 집회 장소로서 마을회관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마을이 공유하는 집회기관이 건립된 것은 전라도지방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모정(茅亭:짚·새 따위로 인 정자)과 기타 지방에 분포되어 있던 농청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모정은 우산각이나 시정(詩亭)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부터 건립되었다. 농청은 농장이라고도 하며, 그 건립 시기는 모정과 유사하다. 이들은 다 같이 두레라는 노동조직을 운영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고, 두레조직의 잉여금이 건립 기금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촌락공동체의 집회 장소로서의 기능과 휴식처의 필요성도 건립의 주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일제시대부터 현대의 새마을운동에 이르기까지는 마을 행정기관으로서, 또 주민 전체의 집회 장소로서 필요하여 관의 주도 아래 마을회관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규모가 큰 마을에 우선적으로 건립되었고,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는 행정 단위의 각 리·동에 마을회관 건립을 추진하여, 거의 모든 마을에 마을회관이 건립되었다.
마을회관은 대부분 마을 입구나 전면에 위치한다. 그 주요 기능을 살펴보면 자치적 집회소로서의 기능과 마을 공동재산의 운영 및 관리 기능, 그리고 마을 행정의 중심으로서 말단 행정적 기능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모정이나 농청 및 일제시대 때의 마을회관은 이들 기능 외에도 두레조직의 장소 및 두레에 필요한 물품의 관리 장소로서의 산업적 기능과 휴식처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모정이 농촌사회경제에 미친 영향」(최재률,『호남문화연구』 4,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1966)

  • 「두레공동체와 농악의 사회사」(신용하,『한국사회연구』 2,한길사,1984)

  • 「두레와 그 어원에 대한 재고찰」(이병도,『가람이병기 박사송수논문집』,196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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