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산군 ()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맹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평안남도 맹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함경남도 영흥군에 접하고, 서쪽은 덕천군, 서남쪽은 순천군, 북동쪽은 영원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11′∼126°40′, 북위 39°24′∼39°51′에 위치하며, 면적 1,101㎢, 인구 약 5만 136명(1944년 현재)이다. 8개 면 85개 이가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맹산면 수정리이다.

자연환경

동북부는 높은 산악지대이나 서남쪽으로 가면서 점점 낮아지는 지세이다. 즉, 동북부는 낭림산맥이 대체로 남북으로 뻗어 횡천령(橫川嶺)을 이룬다.

그 중에 두미산(頭尾山)·철옹산(鐵甕山, 1,095m)·병풍산(屛風山, 1,549m)·약태산(藥苔山, 973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고, 그 지맥이 점차로 낮게 군내(郡內)로 뻗어 내린다.

횡천령은 군의 주산으로 기반이 웅대하고 하늘 높이 솟아 있어서, 정상에 오르면 함경남도 영흥 일대와 동해안이 한눈에 보인다. 이 산에는 산삼을 비롯해 100여 종의 희귀한 약재들이 자생하고 있다. 호랑이·곰·표범·멧돼지·산양·사슴·노루·구렁이 등이 많고 독수리·매·난추니·부엉이·딱따구리 등의 희귀조류도 서식한다.

이 밖에 수라산(繡羅山)과 선유봉(仙遊峰)이 있다. 수라산은 옛 맹산군 읍터의 진산으로 ‘옥녀봉(玉女峰)’이라고도 한다. 산세가 미인형으로 솟아 있으며, 거문룡현(鉅門龍峴)을 좌우로 끼고 감토학령(坎土鶴嶺, 일명 冠峯)이 서북으로 둘러싸고 있다.

병과 독이 놓여 있는 형상이고 탕암조봉(宕巖俎峰)을 동남으로 끼고 있어 마치 병풍에 수를 놓은 듯하며, 한편으로는 부용(芙蓉)과 같은 미인의 형상을 하늘 높이 세워 놓은 것 같다.

이러한 지세에 따라 동북부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하는 북쪽의 애전천(藹田川)과 남쪽의 맹산강(孟山江)은 용덕(龍德) 부근에서 합쳐져 마탄강(馬灘江)이 되어 북쪽으로 흘러 덕천군을 지나 본류인 대동강으로 들어간다.

맹산·애전·마탄의 세 강이 합치는 곳의 토지는 그다지 기름지지 못하나 비교적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이 군의 주요 쌀생산지대를 이루며, 또한 거주지역으로도 이용된다.

기후는 도의 동북부의 높은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지방인 만큼 한서의 차가 심한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은 7.9℃이며 1월 평균기온 -12℃, 8월 평균기온 24.3℃로 연교차가 36℃ 이상이 된다. 연강수량은 1,237㎜에 이르러 다우지역에 속하고, 우량의 대부분이 거의 7∼9월에 집중된다.

역사

[고 대]

이 지역은 처음에 고조선의 영역이었으나, 고조선이 망하자 한때 낙랑군의 패수현(浿水縣)에 속하였다. 그 뒤 고구려가 고대국가로 성장하면서 한반도로 세력을 뻗치자 247년(동천왕 21)에 고구려에 귀속되었다. 343년(고국원왕 13) 평양 동황성(東黃城)으로 일시 천도하고 5부 176성을 두었을 때, 이 곳에는 철옹성을 설치하였다.

668년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자, 한반도 지배에 야심을 품은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두고 고구려 땅에 42주제를 실시했을 때, 이 곳은 맹주(孟州)가 되었다. 당나라 군대는 다른 점령지에서와 같이 마구 약탈을 일삼았으며 이 때 불각(佛閣)이 3개나 파괴되었다.

당나라 군대는 676년 신라에 의해 완전히 축출되었으나, 통일신라의 영토가 대동강 이남으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맹산은 신라의 영역 밖에 놓이게 되어 여진족이 넘나드는 가운데 황폐해졌다.

[고 려]

고려태조의 북진정책에 따라 이 지방이 수복되어 안북부(安北府)에 속했으나 실제로는 여진족이 그대로 살고 있었다. 993년(성종 12) 거란이 고려의 서북지방을 쳐들어왔는데, 이듬해 중군사(中軍使) 서희(徐熙)가 외교담판에 성공해 거란군을 철수시키고 강동 6주를 얻어 내 압록강 동쪽의 여진족을 몰아냈다. 이때 지금의 안주군 동면 맹주리에 맹주를 설치하였다.

1019년(현종 10) 맹주방어사를 지금의 영흥군 횡천면 산성리에 두었다. 고려는 1033년(덕종 2)부터 1044년(정종 10)에 이르는 12년 동안 압록강 입구 함원(咸遠 : 지금의 義州)으로부터 안수(安水 : 지금의 价川)·영변(寧邊)·맹산을 거쳐 함경도의 영흥·정평(定平)·도련포(都連浦)에 이르는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이는 거란족의 침입에 대한 방비인 동시에 강성해지는 여진족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이 무렵 맹주에 목사가 주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뒤 몽고군의 침략이 심해져 이 곳에 인적이 드물어지자 1257년(고종 44)은주(殷州, 順川郡 殷山)에 병합되고, 1261년(원종 2)안주현(安州縣)의 속현(屬縣)으로 편입되었다. 1270년 고려의 항전을 꺾은 원나라가 동녕부(東寧府)를 설치했을 때는 그 압제하에 놓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1290년(충렬왕 16)동녕부가 철폐되자 맹산 땅에 다시금 고려의 행정력이 뻗쳐 그 해에 철성(鐵城)으로 부르고 성주를 파견해 행정 및 군사업무를 겸임하게 하였다. 1389년(공양왕 1)에 일반행정구역으로 체제를 바꾸어 현령을 두고 철성현(鐵城縣)이라 불렀다.

[조 선]

고려 말에는 홍건적이 넘나드는 일도 있었으나 조선 건국 후 서북지방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1400년(정종 2)에 안주(安州)에 합해졌다. 그 뒤 1413년(태종 13)에 서북면을 평안도로 정하고 관찰사를 두게 되었을 때 다시 안주에서 분리되어 맹산현이 설치되었다.

1414년덕주(德州 : 지금의 德川)와 합해 맹덕현(孟德縣)을 설치했다가 이듬해에 다시 분할해 맹산현이라 하고 현감을 두었다. 이 때의 맹산현감은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를 겸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행정구역 변경시 맹산현은 군으로 개편되어 군수를 두고 읍내(邑內)·외남(外南)·원(元)·동(東)·지성(智城)·덕림(德林)·애전(藹田) 등 8개 면을 관할하게 하였다.

1903년에는 순천군(順川郡) 관할의 뇌봉(雷封)·인화(仁化)·학천(鶴泉)·옥정(玉井)·광천(廣泉)의 5개 면을 편입해 13개 면으로 확대되었다. 1914년 8개 면으로 통합되었으며, 군청 소재지는 맹산면 수정리였다.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일어났던 의병운동은 이 지방에서도 동조해, 특히 유인석(柳麟錫)·민용호(閔龍鎬)의 부대가 남부지방에서 관서지방으로 이동 중에 합세, 그 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1905년 이후에는 김여석(金汝錫)·김관수(金寬洙)·최학준(崔學俊)·이영규(李永圭) 등의 의병장이 이 곳에서 수십 명의 의병과 함께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일제강점기의 항일투쟁으로는 1922년의 평남독립단사건을 들 수 있다. 1920년에 결성된 평남독립단은 군자금을 모으고, 일본경찰로부터 무기를 노획하며, 면사무소를 습격, 파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으나, 1922년 덕천·영원·맹산군의 각 주재소를 일시에 습격하려다가 약 100여 명의 단원이 붙잡혔다.

유물·유적

동면의 철옹산성은 고려의 명장 서희가 996년(성종 15)에 축조한 토성으로 주위가 250m에 달하며, 양성리에 패수성지(浿水城址)가 있다.

목조건축물로는 맹산읍의 호연루(浩然樓, 일명 景鄒樓)가 있는데, 이것은 현아 문루의 개폐를 알리는 고루(鼓樓)로, 1717년(숙종 43) 이 곳에 도임한 현감 유징구(柳徵龜)가 건립했다고 한다.

남천강가 옥녀봉 위에 서 있는 월파정은 고대 여민루(與民樓)의 유허를 고려시대에 월파정으로 고쳤으나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30년 이 지방 유지들이 복구한 정자이다.

옥천면 남양리의 와룡정(臥龍亭)은 지략이 제갈공명보다 뛰어났다는 하허(何許)가 지었다고 하며, 성제리의 토론재(討論齋)는 조선 순조 때의 길석로(吉石老)가 도학을 가르치고 제자를 양성했던 서당이다.

상화리의 석로사(石老祠)는 길석로의 학덕을 추모해 세운 사당으로 봄·가을에 향사하던 곳인데 1905년에 폐지되어 폐허화되었다. 당포리의 효자정려문(孝子旌閭門)은 충효로 이름 높던 방태유(方太維)를 포상한 정려문으로, 그의 의관이 후대에 전해져 종가의 사당에 보관하고 있다.

동산리의 주필각(駐驆閣)은 원래 경주김씨의 선조인 김덕의(金德義)의 저택 바깥대문이었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의 대비가 의주로 피난 갈 때 하룻저녁 묵고 《옥추보경 玉樞寶經》 한 권을 내리고 떠나 이로부터 주필각이라고 불렸다.

읍내의 연당(蓮塘)은 18세기 말 현감 위종민(魏鐘敏)이, 맹산의 지세가 화산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향교 뒷산의 수정천을 이용해 만든 인공연못이다. 당포리 문묘 뒤쪽에 있는 향교림의 울창한 만주흑송(滿洲黑松)은 각처에 종묘를 보급해 전국의 모림(母林)이 되기도 하였다.

팔봉산(八峰山)에는 종유석굴이 있고 그 동쪽으로 남천사(南泉寺)의 옛터가 남아 있다. 풍림리의 두미산 아래에는 서림사·남무암·조월암 등이 있다.

교육·문화

옛 교육기관으로 향교와 서당이 있었다. 개화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이들 서당 가운데는 신학문을 겸하는 이른바 개량서당(改良書堂)으로 개편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이러한 개량서당이 다시 근대학교로 바뀐 예로는 봉인면의 팔봉학교(八峰學校)를 들 수 있다.

지덕면의 인화학교(仁和學校) 역시 안씨 문중의 서당이 발전한 것으로, 1905년에 설립된 뒤 일제강점기 말기에 인화국민학교로 개편될 때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인화학교는 이 군에 설립되어 신학문을 가르치던 최초의 근대학교였다. 1945년 8·15광복 당시 12개의 공립국민학교가 있었다.

한편 종교상황을 보면, 이 군은 평안남도에서 성천군 다음으로 천도교세가 큰 지역이었다. 1899년 나인협(羅仁協)·문학수(文學洙) 등이 천도교를 포교한 뒤 급속히 교세가 확장되어 포교소가 33개나 되었고, 교인수는 광복 뒤 1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천도교는 농민사(農民社)라는 단체를 조직해 농민계몽과 포교에 힘쓰는 한편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리하여 1919년 3·1운동 때에는 천도교가 중심이 되어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벌였다.

농민사는 각 마을마다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지식계몽·융화단결·이익옹호·농기구 구판 등의 활동을 전개해 농민운동에도 기여하였다.

한편, 기독교가 포교되어 장로교 계통의 교회가 여러 곳에 세워졌으나 교세가 크게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향교를 중심으로 한 유림회(儒林會)는 유교의 도덕윤리를 강의하였다.

산업·교통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경작지의 대부분이 밭이며, 논은 약 446㏊에 불과하다. 밭 중에는 화전도 꽤 많다.

주요 농산물은 조·콩·옥수수·수수·밀·감자 등이고, 쌀은 광천 부근의 평야와 맹산, 마탄강 유역에서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아마·양귀비 등이 생산된다. 부업으로 누에치기·축우·양돈 등이 이루어지며, 누에치기에서 얻은 누에고치로는 견직물 항라를 생산하고 특용작물인 대마로는 삼베를 짠다.

산지가 많아 삼림이 무성하며 총임야면적은 약 9만 148㏊에 달한다. 벌채한 원목은 뗏목으로 평양시나 진남포까지 운반된다. 나무는 대부분이 적송이며, 희귀한 만주흑송도 약간 산출되는데 성장이 빠르고 곧게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옥천면 북창리의 임업종묘장은 평안남도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크고 많은 품종을 개량, 보급하였다. 임산 부산물로 밤과 잣 등이 생산되며, 한약재로 사향(麝香)·인삼·복령(茯苓)·꿀 등이 산출된다.

지하자원으로 옥천면에 무연탄광이 있으나 교통이 불편해 미개발상태였는데, 평남중앙선(서선중앙선, 일명 平德線)이 개통됨에 따라 장래가 기대된다. 그 밖에 원남면에 수은광(水銀鑛)과 주사(朱砂)가 있으나 역시 미개발상태이다. 군내 여러 곳에서 산출되는 천연슬레이트는 평양시를 비롯해 인근 취락으로 반출된다.

시장으로는 4·9일에 열리는 읍내장(邑內場)·동창장(東倉場), 5·10일에 열리는 북창장(北倉場)·남창장(南昌場)·인덕장(仁德場)·가창장(假倉場), 1·6일에 열리는 애전장(藹田場) 등이 있다.

이 곳에서는 주로 잡곡류와 담배·대마·양귀비 등의 특용작물, 산삼·해송자(海松子)·오미자·사향 등 한약재, 명주·항라·한지 및 기타 일용잡화가 거래된다. 한편, 군내 여러 곳에서 가축시장이 열리는데 북창·애전·가창·남창 우시장 등이 있다.

도로는 맹산을 중심으로 해 2등도로가 맹산∼영원, 맹산∼덕천, 맹산∼태평리간으로 통하며, 3등도로가 맹산∼횡성면 산성리, 맹산∼양덕간으로 통한다. 등외도로는 맹산∼옥천면 묵창리, 봉인면 가창리∼학천면 동창리간으로 각각 통한다.

덕천탄전의 개발에 따라 1939년 평남중앙선 철도가 개통되어 군의 서부를 남북으로 통과하며 가창·북창·옥천 등의 역이 설치되었다. 이 철도로 만포선·경의선·평원선과도 연결이 되므로 교통이 훨씬 편리해졌다.

이 곳 맹산은 예로부터 산세가 아름답고 물맛이 좋으며 맑은 강물을 끼고 있어 경관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 중에서도 뛰어난 여덟 군데의 경치, 즉 파정완월(波亭翫月)·철옹숙운(鐵甕宿雲)·관봉풍추(冠峰楓秋)·용현세우(龍峴細雨)·연당관어(蓮塘觀魚)·소림모종(小林暮鍾)·장대시사(將臺試射)·나산화춘(羅山花春)을 가리키는 맹산팔경이 유명하다.

파정완월이란 옥녀봉에 있는 월파정에 올라 달을 구경하는 것이며, 철옹숙운은 명산으로 알려진 철옹산에 항시 머물고 있는 구름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관봉풍추란 관봉이 붉게 단풍이 들었을 때의 절경을 가리키고, 용현세우는 용고개에 초여름의 가는 비가 촉촉히 내리는 것을 말한다.

또 연당관어란 수정천을 막아 만든 연못에서 노니는 붕어를 한가로이 보는 것이며, 소림모종은 옥녀봉에 있는 소림사에서 은은히 울리는 저녁 종소리를 말하고, 장대시사란 무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대에서 활쏘기 연습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나산화춘은 수라산의 봄에 핀 진달래꽃의 절경을 가리킨다.

읍·면

[동면 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5.69㎢, 인구 4,175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전리이다. 동쪽으로 철옹산성이 함경남도와의 경계선상에서 철벽 같은 자연방벽을 이루고 산꼭대기에는 깊은 못이 있으며, 큰 봉우리에는 기괴한 석굴이 있는데 이 굴에서 내뿜는 폭포수는 그림 같은 비경을 이룬다.

강은 방평리운봉(雲峰)에서 발원한 냇물이 소요리에 이르러 남류하는 맹산강과 합류한다. 농산물로는 쌀·조·옥수수·콩·팥·밀·보리·감자 등이 생산되고,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생산된다. 특히 대마 생산은 군내에서 2위로 삼베직조가 성업을 이룬다.

교통은 덕천에서 함경남도 영흥으로 가는 3등도로가 북부를 통과한다. 명소로는 검산(劍山)에 50여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넓은 석실(石室)과 그 앞에 좌층대(座層臺)가 있으며 좌우에 장군석이 서 있는데, 이 곳은 임경업(林慶業)이 수도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이 부근에 용소(龍沼)라는 못도 있다.

서쪽으로 얼마간 가면 구십구정굴(鼎窟)이 있는데 99개의 크고 작은 석정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굴은 1636년 병자호란 때 현감 임승업(임경업의 친형)이 적군에 패하고 일시 어머니를 모시고 피난했던 곳이라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노전(蘆田)·소요(逍遙)·평지(坪地)·대흥(大興)·신중(新中)·송수(松水)·방평(芳坪) 등 7개 이가 있다.

[맹산면 孟山面]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92.61㎢, 인구 5,240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수정리이다. 1914년 군내면(郡內面) 일원과 내남면(內南面) 일원이 병합되어 군내면으로 되었다가 1917년 맹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동남쪽으로 읍기의 진산인 옥녀봉이 있는데 그 밑으로 냉천장(冷泉場)이 있다. 서쪽으로는 미륵산(彌勒山, 826m)이 있으며, 그 밑에는 샘이 있어 수정과 같이 맑은 물이 대량으로 솟아나는데 물이 맑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 산에는 희귀종인 흑송이 우거져 있는데, 고려 말엽 안향(安珦)이 중국의 곡부(曲阜) 궐리사(闕里祠) 뜰에서 종묘를 얻어다 심었다고 한다.

농산물로는 쌀·조·옥수수·콩·팥·밀·보리 등이 생산되고,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생산된다. 이 곳 대마는 수공업으로 삼베로 직조되는데 품질이 뛰어나 ‘맹포(孟布)’라 알려져 있다.

또 집집마다 누에치기에 주력해 생산된 누에고치로 항라와 명주를 직조해 국내는 물론 중국에까지 수출한다. 수정리에 유기공장이 있으며 학무리에 은광이 있다.

교통은 평녕선 2등도로가 중앙을 관통하며 양맹선(陽孟線) 3등도로가 평녕선에서 분기해 양덕으로 통한다. 유적으로는 서희가 축조한 철옹성이 있는데 둘레가 약 250m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수정(水晶)·당포(堂浦)·학무(鶴舞)·홍문(紅門)·화(花)·다흥(多興)·문로(文蘆)·송계(松界)·상창(上倉)·동매(東梅)·향내(香內) 등 11개 이가 있다.

[봉인면 封仁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67.38㎢, 인구 7,511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창리이다. 1914년 뇌봉면(雷封面)과 인화면(仁化面)이 병합되어 봉인면이 되었다.

팔봉리에 팔봉산이 있으며 그 동쪽으로 남천사지(南泉寺址)가 있고, 종유석동굴과 답근령(踏近嶺)·재동령(梓洞嶺)·노전령(蘆田嶺)·무동산(舞童山) 등의 승지가 연이어 있다. 덕상리에는 박죽산(朴竹山, 814m)이 있다.

하천으로는 은천리에 있는 높이 100여m 되는 은천폭포의 물이 서남류하다가 남양리에서 여러 샛강물과 합류해 성천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농산물로는 쌀 생산이 군내에서 1위이고 조·옥수수·밀·보리·콩·팥·녹두·메밀·감자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목화·닥나무 등이 생산되는데 목화재배는 군내에서 으뜸이다. 닥나무는 한지공장에서 한지로 생산되어 각 면으로 공급된다. 누에치기는 군내에서 5위로, 생산된 누에고치는 항라와 명주로 직조된다.

공업으로는 가창리의 주물공장에서 보습과 솥을 생산해 각 면에 공급한다. 광산으로는 무연탄전과 수은광이 있다. 천연슬레이트는 질이 좋기로 이름 나 있으며 대부분 평양방면으로 반출된다.

교통은 평녕선 2등도로가 면을 관통하며 철도도 통과해 편리한 편이다. 가창리 서쪽에 약 30㎢ 넓이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용연(龍淵, 일명 용늪데기)이 있는데, 물이 솟아나는 압력 때문에 간혹 사람이나 동물이 빠져도 밀려 나와 익사한 예가 없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그 못이 있는 자리는 약 1000년 전에 장재부(張財富)라는 악덕 거부가 살았던 집터라고 한다. 송남리재동령에도 넓이 30㎢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월송용연(月松龍淵)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가 있다.

가창(假倉)·유내(柳內)·송남(松南)·청수(淸水)·팔봉(八峰)·남양(南陽)·은천(銀泉)·남천(南泉)·안하(安下)·덕중(德中)·덕상(德上)·정광(正廣) 등 12개 이가 있다.

[애전면 藹田面]

군의 동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204.67㎢, 인구 5,968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창리이다. 동쪽 풍림리에는 두미산이 있으며, 그 동쪽으로 용각석(龍角石)이 있어 기형을 이룬다. 남쪽으로는 향로봉(香爐峰)이 있다.

두미산은 ‘두무산(頭無山)’이라고도 하는데, 산세가 용이 머리와 꼬리를 운무에 감추고 하늘로 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은 계곡마다 맑은 샘이 솟아나고 경치가 아름다워 무릉도원과 같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계곡에는 이름 난 사찰이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서림사(西林寺)·남무암(南無庵)·조월암(祖月庵) 등이 유명하다. 선승으로 이름 난 방한암(方漢巖)이 서림사에서 도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산에는 조류로 꾀꼬리·매·독수리·오리·원앙·흑조·비둘기·까치·까마귀 등이 살고, 짐승으로는 호랑이·표범·곰·늑대·멧돼지·산양·사슴·노루·여우·살쾡이·너구리·오소리 등이 산다. 또 산삼을 비롯한 약재가 많이 나는데 종류가 무려 150여 종이나 되며, 봄과 가을에는 자생하는 이들 약재를 캐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광리에는 적벽산(赤壁山)이 있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씨(趙氏)가 이 산의 명당자리에 선조를 모신 뒤로 비장(飛將)이 태어나자 역적으로 몰릴까 겁이 나 그 장수를 죽였다고 한다. 창리에는 형제봉이 있는데 형세가 기묘하다.

하천으로는 영운리의 횡천령에서 발원한 애전강이 문곡천(文谷川)과 합류하며, 다시 풍림리의 두미산천(頭尾山川) 및 맹주리천(孟州里川)과 합류해 지덕면으로 유입한다.

농산물로 쌀은 매우 적게 생산되고 주로 조·옥수수·수수·콩·팥·메밀·밀·보리·감자 등이 생산되며,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생산된다. 누에치기는 군내에서 3위로 비교적 누에고치 생산이 많아, 항라와 명주 등을 직조해 농가소득을 올리는 데 기여한다.

교통은 원초선(元楚線) 2등도로가 남단을 통과하는데 지덕면 송암리에서 평녕선과 연결된다. 유적으로는 향로봉 아래에 서림사·남무암·조월암 등의 유명한 사찰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창(倉)·광(廣)·맹주(孟州)·풍림(豊林)·성제(城濟)·초평(草坪)·문곡(文谷)·함온(咸溫)·영운(嶺雲) 등 9개 이가 있다.

[옥천면 玉泉面]

군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64.36㎢, 인구 1만 239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북창리이다. 1914년 옥정면(玉井面)과 광천면(廣泉面)이 병합되어 옥천면으로 되었다.

잉포리에 선유봉이 있고, 그 앞뒤로 두 봉우리가 절묘한 형세를 이루며 별유천지의 선경을 이룬다. 산상에 오르면 삼월강이 유유히 흘러 대동강으로 합류하는 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옥천면 북창리의 가옥 700여 호가 내려다보인다.

선유봉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청룡형·무학형의 여러 산들이 있어 명당자리를 이루어 순천김씨의 선묘 및 김씨 문중의 선유재가 있다.

선유봉 중턱에는 범굴(일명 虎窟)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우리 나라 독립군들이 무기와 인쇄기 등을 밀반입해 이 곳을 활동 은닉처로 삼아 한동안 활약한 곳으로 알려졌다. 일본경찰과 격전이 벌어져 이원보(李元甫)가 전사하고 최석전(崔錫典)·최석모(崔錫模) 등의 독립운동가 수십 명이 잡힌 것도 범굴에서 일어난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매현리에서 발원한 남양천(南陽泉)이 송사리의 샛강물과 합류해 서북류하다가 남양리에서 북류하는 곤동현계류(坤洞峴溪流)를 합류해 수리를 거쳐 덕천군 잠도면으로 유입한다. 용덕리의 청룡산에서 솟아나는 광천은 수원이 방대해 관개할 수 있는 몽리면적이 넓으며, 음료수로도 이용된다.

농산물로는 쌀 생산이 군내에서 제일 많고, 조·옥수수·수수·콩·팥·밀·보리·메밀·감자 등도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목화 등이 생산되며, 대마와 목화생산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누에치기도 군내 1위로 누에고치 생산이 많아, 항라와 명주를 직조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공업으로는 북창리에 주물공장과 유기공장이 있는데, 주물공장에서는 보습과 솥을 생산하고 유기공장에서는 놋그릇을 생산해 각처에 공급한다.

교통은 평녕선 2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통과하며 서쪽 변두리는 철도가 통과한다. 삼리와 잉포리에 약수터가 있는데, 체증이나 위장병 환자에게 약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북창(北倉)·연(蓮)·수(水)·남양(南陽)·송사(松寺)·매현(梅峴)·신석(新石)·삼(三)·용덕(龍德)·잉포(芿浦)·용하(龍下)·안학(安鶴)·회안(檜安) 등 13개 이가 있다.

[원남면 元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37.70㎢, 인구 6,496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향평리이다. 1945년 행정구역 개편시 본래의 원남면에 독립되어 있던 외남면(外南面)이 흡수, 통합되어 지금의 원남면이 되었다.

북쪽으로 옥녀봉이 있으며 동남쪽으로 봉수산(烽燧山)이 양덕군(陽德郡)과의 경계를 이루는데, 산정에는 봉화대를 표시한 철주가 남아 있다.

하천은 남창천(南倉川)이 향평리에서 발원해 신계천(新溪川)과 정인리천(貞仁里川)을 합해 서남쪽으로 흐르다가 다시 중추리의 행산천(杏山川)과 달천리의 문개천(文介泉)을 합해 양덕으로 유입한다. 또 신지천(新址川)이 상계리의 길 옆에서 솟아나는데 매년 무린어(無鱗魚)의 다과에 따라 흉·풍년을 점친다고 한다.

농산물로는 쌀·조·옥수수·수수·콩·팥·밀·보리·메밀·녹두·감자 등이 생산되고,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생산된다. 잎담배 생산은 군내 2위를 차지하며, 대마 생산은 1위로 삼베직조가 성업을 이룬다.

누에치기 역시 군내에서 1, 2위로 꼽히며, 생산되는 누에고치는 항라와 명주로 직조되어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한다. 광산으로는 수은광(水銀鑛)이 있다. 교통은 양맹선(陽孟線) 3등도로가 중앙을 관통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가 있다.

향평(香坪)·상계(上界)·신계(新界)·달천(達泉)·수남(水南)·행산(杏山)·중추(中楸)·정인(貞仁)·주포(朱浦)·문와(文瓦)·기양(岐陽)·인안(仁安)·남흥(南興)·시억(柴億) 등 14개 이가 있다.

[지덕면 智德面]

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130.27㎢, 인구 6,473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덕리이다. 1914년 지성면(智成面)과 덕림면(德林面)이 병합되어 지덕면으로 개칭되었다.

북쪽에는 항상 안개가 끼어 있는 시우봉(時雨峰, 일명 시루봉)이 있고 남쪽으로 맹산면과의 경계에 소학산(巢鶴山)이 있다. 효리에는 명산으로 이름 난 선무봉(仙舞峰)이 있으며, 상화리에는 붓끝같이 뾰족한 문필봉(文筆峰)이 있다.

하천은 애전강이 상화리에서 회천곡과 합류해 다시 송암리에서 약대산천(藥臺山川)·옹동령천(甕洞嶺川) 등 여러 샛강물을 합하고 남류하다가, 용덕리에서 분동천을 합해 마탄강으로 유입한다.

농산물로는 쌀 생산이 군내 2위를 차지하고 그 밖에 조·옥수수·수수·콩·팥·메밀·녹두·밀·보리·감자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대마 등이 생산되는데, 잎담배는 군내에서 제일 많이 재배된다. 누에치기는 군내에서 2위로 누에치기 농가가 많은데, 누에고치로 항라와 명주를 생산해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공업은 주물공장에서 보습과 솥이 생산된다. 광산은 송흥리에 철광이 있는데 옛날에 채굴한 구혈(舊穴)이 남아 있다. 교통은 평녕선 2등도로가 면의 중심을 관통하며, 원초선 2등도로가 송암리에서 분기해 애전면을 거쳐 함경남도 영흥군으로 통한다.

상지성(上智城) 동쪽에 잣바위와 며느리소가 있는데, 그 주위는 수렁이라 접근할 수 없고 그 깊이마저 측정할 수 없다. 전설에 따르면, 그 자리는 시아버지와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살던 집터였다고 하는데, 그 소에는 큰 괴물이 있어 주변의 풀밭에 매 놓은 송아지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용덕(龍德)·와요(臥堯)·양성(陽城)·학포(鶴浦)·효(孝)·덕화(德化)·송암(松巖)·상화(上和)·용산(龍山)·두암(頭巖)·송흥(松興) 등 11개 이가 있다.

[학천면 鶴泉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78.03㎢, 인구 3,834명(1944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창리이다. 원래 순천군(順川郡)에 속해 있다가 1906년 맹산군에 편입되었다. 오봉리에 성덕산(聖德山, 701m)이 있으며, 한발이 심할 때 산꼭대기에서 기우제를 지낸다. 이 산맥은 성천·양덕·맹산의 3개 군이 경계를 이룬다.

하천으로는 학천강(鶴泉江)이 가리의 가라지령에서 발원해 서류하다가 박달천(朴達川)과 합류하며 고원(姑院)에서 다시 여러 샛강물과 합쳐 성천비류강(成川沸流江)의 상류가 된다. 소창리 북쪽 암벽에 조소(槽沼)가 있는데 30여m의 자연조형(自然槽形)을 이루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유명한 못이 있었다.

농산물로는 쌀이 조금 생산되며, 주로 조·옥수수·콩·팥·밀·보리·메밀·녹두·감자 등이 생산된다. 특용작물로는 잎담배·목화·대마 등이 생산되며, 농가마다 누에치기에 힘쓰고 있다. 교통은 자동차 도로가 없기 때문에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가 있다.

소창(召倉)·소하(召下)·함박(咸朴)·고상(古上)·고하(古下)·가(加)·오봉(五峰)·원정(遠井) 등 8개 이가 있다.

광복 후 변천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복천면·봉인면·학천면이 분리되어 신설되는 북창군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맹산면·동면·원남면·지덕면·애천면은 면 행정단위를 폐지하고 이 단위로 분할, 통폐합되어 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1967년 10월 방목리·목장리·장현리가 폐지되고, 1972년 10월 향교리는 새마을리가 되었다.

여러 차례의 개편을 거쳐 현재 평안남도 동북부에 위치하며, 동쪽은 함경남도 요덕군, 서쪽은 덕천시·북창군, 남쪽은 신양군, 북쪽은 영원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6。25'∼126。42', 북위 39。28'∼39。52'에 위치하며 면적 696㎢, 인구 7만 2400여 명(199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은 맹산읍과 새마을·장동(場東)·송광(松光)·매향(梅香)·정평(貞坪)·수전(水田)·신상(新上)·주포(朱浦)·기양(岐陽)·인흥(仁興)·시억(柴億)·대흥(大興)·평지(坪地)·지성(至誠)·신흥(新興)·용암(龍巖)·송산(松山)·광화(廣和)·양산(陽山)·은포(銀浦)·풍림(豊林)·유승(踰勝)·영운(嶺雲)·중흥(中興) 등 24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맹산읍이다.

군은 대동산지의 북동부에 자리잡고 있다. 중부에는 장안산맥이 동서방향으로 뻗어 있고, 동부에는 북대봉산맥이 남북방향으로 뻗어 있다. 여기에는 노란봉(1,502m)·평풍산(1.548m)·민봉산(1,134m)·맹산고개(525m)가 있다. 하천은 마탄강이 동면강과 애창강을 비롯한 여러 개의 지류를 합해 북서쪽으로 흐른다.

기반암은 석회암·점판암·화강암으로 되어 있으며, 토양은 갈색산림토와 논토양·충적토가 깔려 있다. 연평균기온은 7.4℃, 1월 평균기온 -11.6℃, 8월 평균기온 22.5℃이며 첫서리는 10월 29일경, 마감서리는 5월 3일경에 내린다. 연평균강우량은 1,480㎜로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산림은 군면적의 84%를 차지한다. 소나무·참나무·자작나무·단풍나무·이깔나무·삼엽송나무·잣나무·황철나무 등이 자라며 1,000m 이상 고산지대에는 분비나무·가문비나무·전나무 등이 생장한다. 새마을리 일대에는 수령이 수백 년 된 흑송림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식물보호구로 지정되어 있다.

양산리·중흥리 동쪽 일대에는 큰기름새와 참억새군락이 넓게 자리잡고 있으며, 철옹산 일대에는 백리향을 비롯해 수수꽃다리·회양목·개살구나무 등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우리 나라 특산식물인 너삼나무·댕강나무·복시앵두나무·검산초롱 등이 있으며, 산삼·만삼 등의 약초자원이 풍부하다. 산에는 곰·사향노루·멧돼지·밀화부리·개구리 등 여러 가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농경지는 군면적의 8.8%에 이른다. 농작물은 옥수수가 기본을 이루고, 쌀·콩·줄당콩·감자 등이 경작된다. 공예작물로는 담배를 많이 재배하고 송광리·지성리·은포리에서는 각종 과일이 많이 생산된다. 넓은 목초자원을 바탕으로 양·소·염소 등을 많이 사육하며, 국영양종축장에서 생산된 양새끼는 도 전역에 공급된다.

인흥·은포 일대에서는 양잠이 활발하고, 은포·중흥 일대에서는 벌꿀이 많이 나며, 새마을리에는 샘을 이용해 칠색송어·잉어 등을 양식하는 양어장이 있다. 군에는 무연탄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여러 개의 중소 규모 탄광들이 개발되어 있다.

한편, 식료품·초물·목재일용품·건재·토기공장을 비롯해 직물·피복·철제 일용품·농기구공장 등 여러 개의 지방공장들이 배치되어 있다. 교통망은 북창·영원·덕천·신양 등의 군과 함경남도 요덕군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명승지로는 맹산읍 서쪽에 솟아 있는 군의 진산인 옥녀봉의 99정곡, 매향리의 복산굴, 오누이굴 등이 알려져 있다. 맹산읍과 새마을리·양산리 일대에는 방광염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약수가 있으며, 유승리에는 피부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는 온천이 있다.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맹산남자고등중학교와 맹산여자고등중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맹산군지』(맹산군지편찬위원회, 1984)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재관리국, 1985)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평안남도지』(평안남도지편찬위원회, 1977)
『맹산군지』(맹산군지편찬위원회, 1984)
『북한문화재실태와 현황』(문화재관리국, 1985)
『이북5도30년사』(이북5도위원회, 1981)
『인물의 고향-북한편-』(중앙일보사, 1991)
『북한지지요람』(통일원, 1993)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노도양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