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여자는 남자와 같이 바깥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설날에 여자는 세배하러 돌아다니지 않았으나, 양반집 부녀자들은 자기 대신 잘 차려 입은 젊은 계집종을 보내어 새해 문안을 교환하였다.
문안비는 주로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가 있는 집에 보내는데, “과세 안녕하셨습니까? 새해에는 소원성취하신다니 고맙습니다.”라고 새해 인사를 전하게 된다. 한편, 문안비의 새해 인사를 받은 집에서는 그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차려주며, 약간의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답례로 문안비를 보낸 집에 이쪽에서도 문안비를 보내게 된다. 문헌에 나타난 문안비에 대한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조에, 사돈집에서는 부인네들이 잘 차려 입은 어린 하녀를 서로 보내어 새해 평안함을 물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이광려(李匡呂)는 이러한 세시풍속을, “뉘 집 문안비가 문안하려고 뉘 집으로 들어가는고(誰家問安婢 問安入誰家).”라는 시구로 묘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