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고려 말기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면화를 재배한 곳이다. 이 유적은 1363년(공민왕 12) 문익점이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3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고 돌아오면서 목화씨를 몰래 붓통에 숨겨가지고 들여와 그의 장인 정천익(鄭天益)에게 부탁하여 처음으로 목화를 재배하였던 곳이다.
또, 부근의 마을은 문익점의 출생지이기도 한데, 이 마을은 목화재배의 유래를 간직해오면서 지금도 배양(培養)마을로 불리고 있다.
배양마을에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한길가에는 오른편으로 나지막한 돌담을 둘러싼 100여평의 밭이 있고 밭의 오른쪽에는 기와지붕을 올린 비각이 있으며, 그 안에 ‘三憂堂文先生棉花始培地(삼우당문선생면화시배지)’라고 제목을 붙인 사적비가 서 있는데, 이곳이 바로 처음으로 문익점에 의해서 들여온 목화가 번식에 성공하였던 옛터이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옛터에 밭을 일구어 해마다 목화를 재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