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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시계(漏刻)

    과학기술유물

     물의 증가 또는 감소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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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물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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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칭
    각루, 누각
    분야
    과학기술
    유형
    유물
    성격
    측량기구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물의 증가 또는 감소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누각(漏刻)·각루(刻漏) 또는 경루(更漏)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718년(성덕왕 17) 누각전(漏刻典)을 두었고, 749년(경덕왕 8)에서야 누각박사 6인과 천문박사 1인을 두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백제사람에 의하여 이보다 앞서 일본에 이미 누각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의 누각은 이 기록보다 훨씬 앞선 것이 분명하다. 고려시대는 누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와서 누각은 국가 표준시계로 이용되기에 이르렀다.
    누각은 누호·누전(漏箭)·전주(箭舟)로 구성되어 있으며, 누호에는 설수형(泄水型)과 수수형(受水型)이 있다. 설수형은 누호로부터 흘러나간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데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수수형은 누호에 흘러들어온 물의 양으로 시간을 측정하는데 이는 중국에서 많이 사용된 방법이다. 이집트에서는 위의 두 종류가 모두 쓰였다.
    이들 중 수수형누호의 시각측정원리는 다음과 같다. 높은 곳에 놓여 있는 파수호에 채워진 물이 파수호 밑의 구멍을 통과하여 수수호에 흘러들어가면 그 속의 수면이 점차로 높아진다. 이에 눈금을 매긴 잣눈으로 물의 증가량을 측정하여 시간을 알아낸다. 물의 증가량을 알기 위하여 수수호의 지름은 균일한 원통으로 만들었다.
    수수호는 투명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수면을 들여다보는 대신 그 속의 물위에 배[箭舟, 浮龜]를 띄우고 배의 등에 눈금이 매겨 있는 화살[漏箭]을 꽂아둔다. 수수호 속의 수면이 높아지면 배가 수압을 받으면서 위로 올라감에 따라 화살을 밀어 올린다.
    누수(漏水)의 흐르는 속도는 파수호에서의 수압에 관계되고, 수압은 파수호의 수심에 비례하므로 유속을 일정하게 하면 파수호 내의 수위는 일정하게 되어 정확한 시각을 측정하게 된다.
    누호가 언제 발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에서는 서기전 10세기경 주(周)나라 때 이미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718년에 처음으로 누각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태조가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1398년(태조 7) 표준시계로 쓰기 위하여 서울의 종로에 경루(更漏)를 설치하였다.
    그 뒤 세종은 장영실(蔣英實)과 김빈(金鑌)에게 자동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제작하게 하여 1434년(세종 16)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이 자격루는 조선 초기 새로운 표준시계로 쓰였던 것이다. 현재 남아 있는 물시계는 우찬성 유전(柳專)과 공조참판 최세정(崔世鄭)이 제조(提調)가 되어 2년간의 공작을 거쳐 1536년(중종 31) 6월에 완성한 것이다.
    이것은 세 개의 파수호와 두 개의 수수호에 물을 주고받도록 꾸며져 있다. 구조는 가장 높은 곳에 지름 94㎝, 길이 70㎝의 파수호가 한 개 놓여 있고, 그 밑의 앞면에는 지름 46㎝, 길이 40.5㎝의 파수호가 좌우 한 개씩 놓여 있다. 다시 그 앞면 밑에 지름 37㎝, 높이 193㎝의 수수호가 좌우 한 개씩 세워져 있다.
    도수관(導水管)은 가장 큰 파수호에서 작은 파수호로 연결되고, 작은 파수호에서 다시 지름 약 2.5㎝의 파이프로 수수호에 연결되어 누수(漏水)를 보내도록 꾸며져 있다. 이들 누호(漏壺)는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원래 자동물시계인 자격루로서 만들어진 것인데, 1653년(효종 4) 시헌력(時憲曆) 시행으로 말미암아 1일이 96각(刻)의 시제(時制)로 바뀜에 따라 100각 시제로 제작된 종래의 자격장치를 그대로 쓸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덕수궁의 뜰에 설치되어 있는 물시계는 1536년에 제작된 것으로 1945년까지 창경궁에 보존되어 있던 것을 광복 후 덕수궁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이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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