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터의 역사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고려의 남경(南京) 이궁(離宮) 터에 상왕 태종을 위한 수강궁(壽康宮)을 세운 것이다. 성종은 창덕궁이 좁아 세 명의 대비를 위한 공간으로 수강궁을 확장 보완하면서 공사 도중 창경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창경궁은 창건 초기에는 쓰임새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임진왜란 후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면서 이궁(離宮)으로서 활용 빈도가 높아졌다.
창경궁의 전각은 영건, 화재, 훼손 등으로 인하여 변화하였으며, 변화에 따라 크게 다섯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성종 때 세 대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 터를 확장하여 별궁을 세운 시기이다. 명정전을 정전으로 하여 편전인 문정전, 침전인 수령전 그리고 환경전, 경춘전, 인양전, 통명전, 양화당, 여휘당, 사성각 등을 이 시기에 영건하였다.
두 번째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시작하여 광해군 때에 이루어진 1차 중건 시기이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던 것을 명정전, 문정전, 환경전, 인양전 등의 중심 전각들을 위주로 중건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인조반정과 인조 2년(1624)에 일어난 ‘이괄의 난’으로 인해 내전의 전각들이 대부분 소실된 것을 인조 11년(1633)부터 중수하였다. 네 번째 시기는 순조 30년(1830)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하여 내전의 대부분이 소실된 때부터 순조 34년(1834)에 창경궁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다섯 번째는 일제강점기에 들어 많은 전각들이 헐리거나 일제에 의해 훼손과 변형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1907년부터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이름마저 창경원(昌慶園)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부분에 도로를 개설하여 맥을 끊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아직 많은 전각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현재 창경궁은 홍화문 및 궁장, 명정전 권역, 환경전 권역, 통명전 권역, 수강재 권역, 통화전 권역 등을 구성되어 있다.
창경궁에서 특히 중요한 건물은 명정전과 명정문 그리고 홍화문 등인데, 이들은 현존하는 궁궐 건물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에 속하는 건물들로 건축기법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